전기차 2위 자리마저 뺏겼다
기아, 판매 ‘반토막’에 무너진 실적
하이브리드가 유일한 희망줄

“이대로면 점유율 더 떨어진다.”
3년간 미국 전기차 시장 2위를 지켜온 현대차그룹이 올해 상반기, 끝내 3위로 밀려났다. 전기차 판매량은 작년보다 28%나 줄었고, 주요 모델은 절반 가까이 출고량이 급감했다.
겉으로는 ‘역대 최대’ 미국 실적을 자랑했지만, 속을 들여다보면 전기차 부문은 심각한 후퇴를 겪고 있다.
급변하는 정책 환경과 현지 경쟁사들의 신차 공세, 여기에 정체된 수요까지 복합적인 위기 앞에서 현대차그룹은 이제 반등의 실마리를 찾아야 하는 갈림길에 서 있다.
기아 EV, ‘반토막’ 된 이유는?

기아의 전기차 판매량은 올해 상반기 1만 3.674대로, 작년 같은 기간 2만 9.392대에서 무려 53.4%나 줄었다. 특히 니로EV는 67%나 감소해 2,861대에 그쳤고, EV6와 EV9도 각각 46.3%, 48.9% 하락하며 부진을 면치 못했다.
반면 현대차는 비교적 선방했다. 아이오닉5는 2% 늘어난 1만 9,091대를 기록했고, 5월부터 본격 판매된 아이오닉9도 감소폭을 줄이는 데 기여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전체 전기차 판매량은 3만 859대로 5% 줄어들었다.
결과적으로 현대차그룹은 상반기 미국 전기차 시장에서 점유율 7.6%를 기록하며, 작년보다 3.4% 하락했다. 2위를 빼앗긴 것은 물론이고, GM에 밀려 3위로 내려앉았다. 2022년 이후 처음 있는 일이다.
美 관세·보조금 축소…‘트럼프 리스크’ 현실화

판매 부진의 배경에는 미국의 통상 정책 변화가 자리하고 있다. 특히 트럼프 전 대통령이 서명한 ‘하나의 크고 아름다운 법안(One Big Beautiful Bill Act·OBBBA)’이 결정타였다.
오는 9월 말까지 전기차 신차에 적용되던 최대 7,500달러의 세액 공제가 조기 종료되며, 현대차그룹은 연간 1조2,000억 원 규모의 혜택을 잃게 된다.
여기에 25%에 달하는 자동차 관세까지 덮쳐 기아의 미국 수출 실적은 직격탄을 맞았다. 실제로 관세 발효 직전인 3월, 미국에서 1,967대 팔리던 기아 전기차는 6월엔 499대까지 떨어졌다. 이는 1년 전, 10분의 1 수준이다.
한 업계 전문가는 “관세 안에 있는 미국 완성차 업체들이 오히려 수혜를 입었다”고 분석했다.
전략 수정, 하이브리드가 돌파구 될까

현대차그룹은 당장의 위기를 넘기기 위해 생산 전략을 조정하고 있다.
조지아주 메타플랜트 공장에서 전기차 생산을 확대하다가 6월 들어 생산량을 줄였다. 대신 하이브리드차 생산을 늘리는 방향으로 방향을 틀었다.
하이브리드는 생각보다 좋은 실적을 냈다. 상반기 미국 시장에서 현대·기아의 하이브리드 판매량은 13만 6,180대로, 1년 새 45.3%나 증가했다. 연비 효율과 충전 인프라 부담이 적은 점이 강점으로 작용했다.
한 전문가는 “보조금이 사라지면 가격이 내연기관차 수준으로 떨어지지 않는 한 전기차는 경쟁력이 약해질 수밖에 없다”며, “하이브리드는 그 공백을 채울 수 있는 현실적인 대안”이라고 말했다.
위기를 기회로 바꿀 ‘재정비’의 시간

결국, 지금 필요한 것은 ‘기술의 진보’가 아니라 ‘소비자의 설득’이다. 전기차 시대는 분명 오고 있지만, 그 길목에서 현대차가 직면한 과제는 예상보다 복잡하다.
관세와 보조금 축소라는 외부 변수, 가격 민감도가 높아진 시장 분위기, 그리고 빠르게 진화하는 경쟁사들 속에서 현대차그룹은 선택을 강요받고 있다.
지금은 단순한 판매량 회복이 아닌, 시장을 다시 설계할 수 있는 전략적 반격이 필요한 시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