탈레반 보복 우려한 이주 신청
보안 사고로 2만5천명 정보 유출
사고 수습 비용에 최대 13조 원

영국 군인 한 명의 이메일 전송 실수가 수습 비용만 13조 원이 필요한 대규모 보안 사고로 이어졌다.
영국에서 발생한 보안 사고는 서방에 협조한 후 탈레반의 보복을 피해 이주하려는 아프간인들에 대한 정보가 노출된 것인데 해당 사건으로 인해 피해를 본 인원만 2만5천명에 달한다.
단 한 번의 클릭이 불러온 재앙

사건의 주인공은 런던 본부에서 망명 신청자의 신원 확인 업무를 담당하던 한 군인이었다. 이 해병대원은 서방에 협력했다는 이유로 탈레반의 보복을 두려워해 영국 이주를 신청한 아프간인들의 정보를 다루는 것이 임무였다.
영국은 해당 군인에게 이주 신청자 중 실제로 영국군 편에서 싸운 부대에 소속된 사람을 확인하라 지시했다. 그런데 여기서 치명적인 실수가 발생했다. 그가 전체 신청자 정보가 담긴 파일을 이메일로 전송한 것이다.
유출된 스프레드시트 파일에는 아프간인 약 1만9천명과 그 가족 6천명이 포함된 총 2만5천명의 정보가 담겨 있었다. 이들은 자칫 탈레반에게 목숨을 위협받을 수 있는 위험한 상황에 처한 사람들이었다.
18개월 늦은 발견, 이미 퍼진 정보

더욱 충격적인 것은 영국 국방부가 이 심각한 유출 사실을 뒤늦게 파악했다는 점이다. 영국 국방부는 사건 발생 이후 무려 18개월이 지난 2023년 8월에야 사태의 심각성을 깨달았으며 이마저도 한 주민이 지역구 하원의원 등에게 제보 메일을 보냈기 때문이었다.
또한 그로부터 4일 후에는 한 아프간인이 페이스북에 파일 일부를 게시했다. 흥미롭게도 이 게시자는 이후 망명 신청이 거부된 것으로 알려졌다. 이에 영국 정부는 뒤늦게 진상을 파악하고 사태를 수습하려 했다.

그런데 일부 언론이 취재를 시작하자 정부는 안보 위험을 이유로 법원에 공표 금지 가처분을 신청했으며 법원은 정부 신청보다도 더 높은 수준의 공표 금지 결정을 내렸다.
그러나 영국 고등법원이 비밀 유지가 표현과 언론의 자유를 제한한다며 해제 결정을 내리자 이 황당한 보안 사고가 세간에 알려지게 되었다.
막대한 수습 비용과 끝나지 않은 후유증

영국 일간지는 이 사건을 “역사상 가장 비싼 이메일”이라고 표현했다. 영국 정부는 이 혼란을 수습하는 데 드는 비용이 70억 파운드, 한화 약 13조 원에 달할 것으로 추산했다. 최근 55억 파운드, 한화 약 10조2천억 원으로 추산치가 낮아지긴 했지만 여전히 천문학적인 금액이다.
영국은 주요 피해자를 이주시키기 위한 새로운 비밀 프로그램을 마련했고 국방부에 따르면 이제까지 6천900명이 이주했거나 곧 이주할 예정이다.
하지만 유출 명단에 포함되었던 655명의 영국 국방부를 상대로 각각 9천300만 원 상당의 손해배상 청구 소송을 준비하고 있으며 소송에 동참하는 인원이 늘어나면 최종 비용은 더욱 커질 전망이다.
무엇보다 탈레반의 보복 위험을 감수하고 영국에 협조한 현지인들의 정보가 유출되었다는 점에서 영국군에 대한 유무형의 신뢰도 하락은 금전으로만 산출할 수 없다. 단 한 번의 클릭이 불러온 이 사건은 디지털 시대 정보 보안의 중요성을 보여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