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성능 전기차의 진화는 어디까지
650마력·드리프트·사운드로 감성 자극
현대차의 기술력, 감성은 과제 남아

“전기차로 드리프트가 가능하다고?”
영국 굿우드 페스티벌 오브 스피드 현장에서 관람객들의 시선을 단번에 사로잡은 차량이 있었다. 바로 현대자동차가 공개한 고성능 전기 세단 ‘아이오닉 6 N’였다.
정지 상태에서 시속 100km에 도달하는 데 걸리는 시간은 단 3.2초, 출력은 무려 650마력으로, 모터스포츠 기술이 녹아든 이 차량은 단순한 성능을 넘어 감각적인 주행 경험까지 제공하는 데 주력했다.
압도적인 퍼포먼스, 일상과 트랙을 넘나들다

아이오닉 6 N은 현대차 고성능 브랜드 ‘N’의 철학을 집약한 전동화 모델이다.
N이 추구하는 세 가지 가치, ‘코너링 악동’, ‘레이스트랙 주행능력’, ‘일상의 스포츠카’를 모두 담아낸 것이 특징이다. 고속 주행에서 예측 가능한 조향성과 일상 주행에서의 쾌적한 승차감을 동시에 구현했다.
주행 환경에 맞춰 배터리 출력과 온도를 조절하는 ‘N 배터리 모드’, 고속 코너링을 위한 ‘하이드로 G부싱’과 듀얼 레이어 부싱, 공기저항계수 0.27의 설계까지 더해졌다. 무게 중심도 낮춰져 핸들링의 안정감이 배가됐다.
굿우드 페스티벌 힐클라임 구간을 직접 달리며 그 퍼포먼스를 실시간으로 입증한 것도 인상적이다. 현대차는 이 차량을 국내에서도 전시할 예정으로, 의왕 롯데프리미엄아울렛에서 고객들이 직접 체험할 수 있는 자리를 마련한다.
‘몰입감’ 키워드로 기능 강화…그러나 감성은 과제

현대차는 단지 성능 수치에 그치지 않고, 운전자가 몰입감을 느낄 수 있도록 다양한 전동화 특화 기능을 마련했다.
전기차임에도 내연기관 차량처럼 기어 단수를 흉내 낼 수 있는 ‘N e-쉬프트’, 스포츠카의 엔진음을 재현하는 ‘N 액티브 사운드 플러스’ 등이 대표적이다.
또한 주행 중 랩 타임을 기록하거나 주행 영상을 분석할 수 있는 ‘N 트랙 매니저’와 ‘N 레이스 캠’ 같은 기능도 눈에 띈다.
그러나 “놀라운 기술력은 인정하지만, 감성적으로 사고 싶은 차인가?”라는 질문 앞에서는 아직 갈 길이 멀다는 평도 나온다.
글로벌 고성능 시장에서의 과제

기술만으로는 브랜드를 완성할 수 없다. 전문가들은 현대차가 ‘고성능 전기차’의 기술력에서는 상당한 진전을 이뤘지만, 브랜드 정체성과 감성적 스토리텔링 측면에서는 여전히 경쟁사에 뒤처진다고 지적한다.
테슬라는 이미 모델 S 플래이드를 통해 1,000마력 전기차 시대를 열었고, 포르쉐는 타이칸으로 고성능 전기차의 감성 기준을 정립했다. 또한, BMW는 M 전동화 라인업을 통해 브랜드 팬층을 EV로 유도하고 있다.

반면, 현대차는 기술을 강조하는 데 치중한 나머지 브랜드 정체성 확립이 미흡하다는 평가다. 굿우드 페스티벌이라는 매니아 중심 플랫폼만으로는 대중적 설득력이 떨어지며, 감성과 신뢰를 쌓기 위한 지속적인 스토리텔링이 필요하다는 목소리도 있다.
고성능 기능에 집중한 드리프트 사양, 파츠 옵션 등은 인상적이지만, 가격 전략이나 실제 구매 가능성에 대한 설명이 부족했던 것도 아쉬운 부분이다. 시장에서의 ‘실질적 존재감’을 입증하기 위해선 기술 외에도 ‘이 차를 왜 사야 하는가’에 대한 감성적 동기를 보여줘야 판매까지 이어질 수 있다.
전기차 전환의 열쇠, 기술력 이상의 전략

여기에 현대차는 아이오닉 6 N과 함께 대형 전기 SUV 아이오닉 9도 공개하며 전기차 라인업 확대에 힘을 실었다.
특히 통합 플랫폼 IMA(차세대 통합 모듈러 구조)를 통한 개발 효율성과 OTA(무선 업데이트)를 통한 성능 개선, 전고체 배터리 개발 등 하드웨어와 소프트웨어를 아우르는 미래 전략도 제시했다.

하지만 단순한 기술의 진보만으로는 글로벌 고성능 시장에서 우위를 점할 수 없다. 현대차가 아이오닉 6 N을 통해 보여준 기술력에 감성과 브랜드 이야기를 덧붙인다면, 진정한 글로벌 프리미엄 고성능 브랜드로 도약할 수 있을 것이다.
지금 필요한 것은 단순히 “빠른 차”가 아니라, “사고 싶은 차”로의 전환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