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73조 몰린 美 AI 주식…한국 투자자 ‘올인’
엔비디아·MS 고점 논란…버블 경고등 켜졌다
“실적 기반” 반론 속 쏠림 리스크는 여전

“노후자금 다 넣었는데 어떡하지 싶어요.”, “다들 오르니까 따라 샀는데 불안해졌어요.”
2000년대 초 정보기술(IT) 거품이 붕괴하기 직전, 모두가 장밋빛 미래를 확신하던 순간이 있었다. 20여 년이 흐른 지금, 미국발 인공지능(AI) 열풍이 그 기억을 소환하고 있다.
다만 결정적인 차이점이 있다면, 당시와 비교할 수 없을 만큼 막대한 한국 개인 투자자들의 자금이 미국 증시의 심장부로 직접 흘러 들어갔다는 점이다.
경고음이 울리기 시작한 AI 시장의 작은 균열이 한국 투자자들에게는 거대한 충격파로 돌아올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온다.
173조 원 몰린 美증시… ‘AI 올인’ 한국 투자자, 괜찮을까

한국예탁결제원에 따르면 2025년 상반기 기준 국내 투자자의 미국 주식 보유액은 약 173조 원. 전체 해외 주식 투자의 92.5%가 미국에 집중된, 그야말로 ‘올인’에 가까운 포트폴리오다.
특히 AI 주식 쏠림 현상은 개인 투자자만의 문제가 아니다. 국내 최대 기관투자인 국민연금도 미국 빅테크에 대규모 자금을 투입하면서 우려는 더욱 커지고 있다.
문제는 이 막대한 자금의 향방이다. 한국 투자자들은 AI 혁명을 이끄는 소수의 기술주에 집중적으로 베팅하며, 시장의 열기와 위험을 동시에 끌어안고 있다.
그 위험성은 투자 포트폴리오의 속살을 들여다보면 더욱 선명해진다. 한국인이 가장 많이 보유한 미국 주식 상위 5개 종목은 테슬라, 엔비디아, 팔란티어, 애플, 마이크로소프트다.

이 중 최소 세 곳은 AI를 핵심 성장 동력으로 삼고 있으며, 특히 엔비디아(약 20조 2천억 원)와 마이크로소프트(약 4조 8천억 원)는 AI 버블 논란의 진원지에 있다.
AI 반도체 시장을 장악하며 시가총액 4조 달러를 돌파, 기술주 패권의 상징이 된 엔비디아의 질주에 수많은 한국 투자자들이 운명을 걸고 있는 것이다.
“PER 30배, 닷컴 때보다 더 뜨겁다”… AI 쏠림에 커지는 버블 우려
하지만 이 눈부신 상승세 뒤편에서는 월가의 경고등이 깜빡이고 있다.
아폴로 글로벌 매니지먼트의 토르스텐 슬록 수석 이코노미스트는 “현재 뉴욕 증시 상위 10개 기업의 12개월 선행 PER이 30배에 근접해, 2000년 IT 버블 정점(25배)을 넘어섰다”고 지적했다.

미래 가치에 대한 기대감이 기업의 실제 가치를 과도하게 부풀리고 있다는 구체적인 지표다. 만약 이 같은 경고가 현실이 되어 조정장이 찾아온다면, 특정 종목 쏠림 현상은 부메랑이 되어 돌아온다.
가령 AI 주가가 30% 하락한다고 가정할 경우, 한국 투자자들이 보유한 엔비디아와 마이크로소프트 두 종목에서만 발생하는 평가 손실은 약 7조 4천억 원에 달한다.
여기에 테슬라와 팔란티어 등 다른 AI 관련주의 하락까지 더해진다면 피해 규모는 걷잡을 수 없이 커질 수 있다.
실적이냐 환상이냐… 뜨거운 AI 열기 속 내 자산은 안전한가
물론 현재 상황을 단순 과열로 치부하기 어렵다는 반론도 존재한다.

캐피털 이코노믹스의 존 히긴스 수석 이코노미스트는 “오늘날 AI 기업들의 주가 상승은 평가가치 상승보다는 기업 이익 증가에 기인한다”며 실적이 뒷받침된다는 점에서 과거 닷컴 버블과 다르다고 선을 그었다.
AI 기술이 산업 전반의 생산성을 끌어올리는 ‘실체 있는 성장’이라는 주장이다. 결국 시장은 ‘실적 기반의 성장’이라는 낙관론과 ‘고평가 버블’이라는 비관론 사이에서 팽팽한 줄다리기를 하고 있다.
어느 쪽의 주장이 맞든 분명한 사실은, 지금이 투자자 개개인이 자신의 포트폴리오를 냉정하게 되짚어봐야 할 때라는 점이다.
모두가 환호하는 뜨거운 열기 속에서, 나 홀로 투자 자산의 온도를 점검해야 하는 절박한 이유다. 안일한 낙관이 더 큰 화를 부를 수 있다는 것은 역사가 증명해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