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천조 국민연금 운용 방식
숨겨진 거래 비용 확인
노후 자산 효율성 제고 시급

“내 노후자금이 눈에 보이지 않는 곳에서 조금씩 줄어들고 있다면?”
1천조원이 넘는 국민연금이 주식 투자 과정에서 발생시키는 ‘숨겨진 비용’이 국민의 노후 자산을 갉아먹고 있다는 충격적인 연구 결과가 나왔다.
특히 외부 운용사들의 공격적인 투자 방식이 오히려 시장을 흔들고 거래 비용을 높여 연금 수익률을 떨어뜨리는 것으로 드러났다.
거대한 공룡이 움직일 때 생기는 파장

15일 국민연금공단이 공개한 연구원 보고서에 따르면, 2023년 말 기준 1천36조원 규모를 자랑하는 국민연금기금의 주식 투자 행태가 예상보다 큰 비효율을 낳고 있다.
세계 3대 연기금으로 꼽히는 국민연금은 그 엄청난 규모 때문에 주식을 사고팔 때마다 시장에 큰 파장을 일으킨다. 문제의 핵심은 바로 이 과정에서 발생하는 ‘시장충격비용’이다.
거대한 자금이 특정 주식을 대량으로 사들이면 주가가 순간적으로 뛰어오르고, 반대로 팔 때는 폭락한다. 이 과정에서 발생하는 손실이 바로 눈에 보이지 않는 비용인 셈이다. 이런 비용이 쌓이면 결국 국민의 연금 수익률이 떨어지게 된다.
외부 운용사의 과도한 거래가 문제

연구진은 국민연금의 투자 전략을 직접운용과 위탁운용, 그리고 시장 지수를 따라가는 패시브 방식과 적극적으로 매매하는 액티브 방식으로 구분해 분석했다. 현재 국민연금은 국내주식의 30%를 안정적인 패시브로, 나머지 70%를 공격적인 액티브 전략으로 운용 중이다.
분석 결과는 놀라웠다. 국민연금이 직접 관리하는 자금, 특히 ‘액티브 직접(코어)’ 전략은 시장 상황을 세심하게 고려해 거래 시점을 분산시키는 등 충격을 최소화하고 있었다.
하지만 전체 운용 자금의 절반가량을 차지하는 외부 위탁운용사들의 행태는 달랐다. 이들 중 특히 ‘순수주식형’ 위탁 전략을 구사하는 운용사들은 주식을 사고팔 때 시장에 큰 충격을 주며 과도한 거래 비용을 발생시키는 것으로 나타났다.
상황은 국민연금이 특정 기업 지분을 1% 이상 변동시켜 의무 공시를 해야 하는 날 더욱 심각해졌다. 이런 특별한 거래일에 주가 변동을 주도한 것은 다름 아닌 액티브 위탁운용사들이었다. 이들의 공격적인 매매가 시장을 흔들고 거래 비용을 급증시킨 것이다.
개미와 외국인의 반격

국민연금이라는 ‘공룡’이 움직이면 다른 투자자들도 가만있지 않는다. 보고서에 따르면 개인투자자와 외국인들은 국민연금이 대량 매수에 나서면 오히려 매도로, 대량 매도에 나서면 매수로 대응하는 ‘역추세’ 전략을 구사했다.
거대 자금의 움직임을 역이용해 단기 차익을 노리는 이런 행태는 시장의 변동성을 더욱 키우는 악순환을 만들어냈다.
연구진은 국민연금의 국내주식 비중이 점차 줄어드는 상황에서 이런 비효율적인 운용은 더 이상 용납될 수 없다고 지적했다. 특히 높은 비용을 유발하는 위탁운용 부문의 성과 평가 체계를 전면 개선하고, 효율적인 직접운용 비중을 늘려야 한다는 것이다.
1천조원이라는 어마어마한 규모의 자금이 더 효율적으로 운용될 수 있다면, 그 혜택은 고스란히 국민의 노후 안정으로 돌아갈 것이다. 지금이라도 국민연금 운용 체계의 근본적인 개선이 필요한 시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