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법 개정으로 주주 권익 강화
공기업 요금 인상 압박 증가
서민 가계 부담 우려 확산

“이사들이 주주 이익을 무시하면 소송 당할 수 있다.”
최근 국무회의를 통과한 상법 개정안이 에너지 공기업들을 긴장시키고 있다.
그동안 정부 눈치를 보며 요금을 동결해온 한국전력과 한국가스공사가 이제는 요금 인상을 요구하는 주주들의 압박을 피하기 어려워졌다는 분석이다.
주주 권익 보호 강화, 공기업에 미치는 파장
지난 15일 국무회의에서 의결된 상법 개정안의 핵심은 이사의 충실의무를 ‘회사’에서 ‘회사와 주주’로 확대한 것이다. 공포와 동시에 효력이 발생한 이 조항은 한전과 가스공사 같은 상장 공기업에 즉각적인 영향을 미치고 있다.

에너지 업계 관계자는 “이사들이 단순히 정부 지침만 따르다가는 주주들에게 배임 소송을 당할 수 있게 됐다”며 “재무 건전성 확보를 위한 요금 조정이 불가피해 보인다”고 전했다.
상장된 에너지 공기업들의 재정 상황은 이미 위험 수준을 넘어섰다. 올해 1분기 공시 기준 한전의 누적 적자는 30조 9000억원, 가스공사의 미수금은 14조원을 넘어섰다. 매일 한전은 120억원, 가스공사는 47억원의 이자를 부담하고 있다.
이러한 적자 누적은 정부의 요금 억제 정책 때문이라는 분석이 지배적이다.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 이후 국제 에너지 가격이 급등했지만, 정부는 물가 안정을 위해 요금 인상을 억제해왔다.
소액주주 영향력 확대, 요금 인상 명분 강화
내년 7월부터 시행되는 ‘3% 룰’도 변화의 신호탄이다. 감사위원 선임 시 대주주의 의결권을 3%로 제한하면서 소액주주들의 발언권이 커진다.

한 증권사 애널리스트는 “소액주주들이 적자 경영에 대해 목소리를 낼 수 있는 제도적 장치가 마련됐다”며 “공기업 이사회가 더 이상 정부 방침만 따를 수 없는 상황”이라고 분석했다.
실제로 2011년 한전 소액주주들이 제기한 배상 소송은 패소했지만, 이번 상법 개정으로 상황이 달라졌다. 이사 개인도 소송 대상이 될 수 있어 경영진의 부담이 가중됐다.
에너지 업계의 한 관계자는 “기존에는 공기업의 공공성을 이유로 법원이 손을 들어줬지만, 이제는 주주 이익도 고려해야 한다”며 “판례가 바뀔 가능성이 있다”고 전망했다.
요금 현실화 불가피, 정부도 딜레마
에너지 공기업들은 공식 입장 표명을 자제하면서도 내부적으로는 요금 조정 시나리오를 검토 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한 공기업 관계자는 “주주 보호가 법적 의무가 된 만큼, 적자 경영을 방치하기 어렵다”고 귀띔했다.

시장에서는 중장기적으로 요금 인상이 불가피하다는 전망이 우세하다. 증권가에서는 2025년 하반기 이후 단계적 요금 조정 가능성을 높게 보고 있다.
정부도 딜레마에 빠졌다. 물가 안정과 주주 권익 보호라는 두 마리 토끼를 잡아야 하는 상황이다. 한 정부 관계자는 “에너지 공기업의 경영 정상화는 필요하지만, 서민 부담을 고려하지 않을 수 없다”고 어려움을 토로했다.
전문가들은 요금 체계 개편과 함께 취약계층 지원 방안 마련이 시급하다고 지적한다. 에너지경제연구원 한 연구위원은 “무작정 요금을 올리기보다는 합리적인 요금 체계를 만들고, 서민들을 위한 안전망을 구축해야 한다”고 조언했다.
상법 개정으로 시작된 변화의 바람이 서민들의 전기·가스 요금표에 어떤 숫자로 나타날지, 모든 이목이 집중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