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쟁력 확보 위한
한일 협력 필요하다는 진단
데이터 양보다 질로 승부

“중국보다 우수해야 우리 제조업이 살아남을 수 있다.”
최태원 대한상공회의소 회장이 던진 이 한 마디가 18일 경주에서 열린 하계포럼을 술렁이게 했다. 더 놀라운 건 그가 제시한 해법이었다. 경쟁상대로만 여겨졌던 일본과 손을 잡자는 것이다.
데이터가 곧 경쟁력인 시대
한국 제조업계 최고 경영진들이 모인 자리에서 최 회장은 인공지능(AI) 시대 생존 전략을 놓고 파격적인 제안을 내놨다. 중국의 막대한 데이터 물량 공세에 맞서려면 일본과 제조 AI 데이터를 공유해야 한다는 주장이다.

최 회장은 이날 ‘AI 토크쇼’에서 데이터의 중요성을 강조했다. 그는 “건강한 AI를 키우려면 영양가 있는 밥을 먹여야 하는데, 그 밥이 바로 데이터”라며 “우리나라는 제조 분야 데이터가 풍부한 편”이라고 평가했다.
하지만 문제는 중국이었다. 최 회장은 “중국은 우리보다 훨씬 많은 데이터를 보유하고 있다”며 “그들의 학습 속도가 빨라지면 우리 제조업이 더 큰 충격을 받을 수밖에 없다”고 우려를 표했다.
일본과의 협력이 답인 이유
그렇다면 왜 일본일까. 최 회장은 “일본 역시 상당한 제조 AI 데이터를 갖고 있어서 서로 교환하고 학습시키면 훨씬 더 좋은 AI를 만들 수 있을 것”이라고 설명했다.

한국과 일본은 각각 다른 분야에서 강점을 보유하고 있다. 일본은 자동차와 정밀기계 분야에서 오랜 기간 축적한 고품질 공정 데이터를, 한국은 IT와 전자, 반도체 분야의 생산 현장 기반 데이터를 갖고 있다.
이런 상호 보완적 데이터를 결합하면 단일 국가로는 도달하기 어려운 범용적이고 우수한 AI 개발이 가능하다는 것이 전문가들의 분석이다. 데이터의 다양성이 확보되면 AI 성능이 비약적으로 향상될 수 있기 때문이다.
중국은 세계 최대 제조업 국가답게 엄청난 규모의 산업 데이터를 축적하고 있지만, 한일 협력은 단순 데이터 양이 아닌 품질로 승부할 수 있다. 글로벌 프리미엄 시장이 요구하는 신뢰성, 안전성 기준을 결합하면 차별화된 경쟁력을 확보할 수 있다는 것이다.
현장에서 입증되는 AI 효과
포럼에 참석한 경영진들은 이미 업무에서 AI를 적극 활용하고 있다고 밝혔다. 최 회장은 “제가 아는 지식을 확인하거나 연설문을 작성할 때 AI가 미처 생각하지 못한 아이디어를 제공해서 자주 이용한다”고 말했다.

정신아 카카오 대표도 “회사에서 복잡한 문제를 고민할 때 AI로 리서치하고 내용을 정리해서 활용한다”며 “AI가 동료로서 자리 잡고 있다는 느낌”이라고 전했다.
제조 현장에서도 AI의 위력이 입증되고 있다. 한 지방 기업인은 “사천 공장에 AI 공장장을 도입했는데 처음엔 반신반의했지만 지금은 박사급 직원 2명 이상의 역할을 해내고 있다”며 “수십 킬로 떨어진 공장을 제어하는 디지털 트윈 기술도 검토 중”이라고 소개했다.
정 대표는 메타가 데이터 처리 스타트업에 대규모 투자한 사례를 들며 “데이터가 AI 시대 핵심 경쟁력이자 자원임을 보여주는 것”이라고 평가했다. 결국 단순한 데이터 양으로는 중국을 따라잡기 어려운 만큼 품질과 신뢰성으로 승부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다.
한일 협력은 이런 맥락에서 중국의 물량 공세에 맞선 차별화 전략이 될 수 있다. 특히 미국과 유럽에서 중국 AI에 대한 규제가 강화되는 상황에서 신뢰성과 안전성을 앞세운 한일 연합의 경쟁력이 더욱 주목받을 것으로 보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