봉준호 감독 누나가 말한 “특별히 끼가 있진 않았던” 소년
어린 시절부터 남다른 배려심으로 주변 기억돼
봉준호의 ‘미키 17’, 북미 박스오피스 1위 등극

봉준호 감독의 신작 미키 17이 개봉 첫 주말, 북미 박스오피스 1위에 올랐다. 이는 한국 감독이 이룬 최초의 기록이다.
박스오피스 1위, 그럼에도 아쉬운 ‘미키 17’

지난 9일(현지시간) 할리우드 매체 버라이어티와 데드라인에 따르면, 미키 17은 개봉 후 사흘간 북미 3,807개 상영관에서 1,910만 달러(한화 약 277억 원)의 티켓 수익을 거두며 박스오피스 정상을 차지했다.
또한 북미 외 지역에서는 3,420만 달러(한화 약 495억 원)를 추가로 벌어들여, 개봉 첫 주 전 세계 흥행 수입은 5,330만 달러(한화 약 771억 원)에 달했다.
그러나 제작사 워너브라더스가 투입한 제작비 1억 1,800만 달러(한화 약 1,710억 원)에 마케팅 비용 8,000만 달러(한화 약 1,160억 원)까지 더하면, 흑자 전환을 위해서는 최소 2억 7,500만 달러(한화 약 3,980억 원)의 수익이 필요하다는 분석이 나온다.

데드라인은 “이 오리지널 SF 영화의 수익이 기대에 미치지 못해 워너브라더스에겐 아쉬운 주말이 됐다”고 전했다.
12살 소년의 꿈, 전 세계를 사로잡다

봉준호 감독은 어린 시절부터 조용한 성격이었다. 그의 누나는 “말수가 적고 느리지만, 공부를 잘했고 리더십도 있었다”고 회상했다.
그러나 단순히 조용한 학생이 아니었다. 경제적으로 어려운 친구들을 집으로 초대해 밥을 챙겨주는 등 따뜻한 마음을 지닌 아이였다.
그의 창의력은 아버지의 서재에서 비롯됐다. 시중에서 쉽게 구할 수 없는 영화, 건축, 디자인 관련 서적을 접하며 감각을 키웠다.

또한, 1970~80년대 당시 대부분의 가정에서는 만화를 금기시했지만, 그의 가족은 함께 만화를 보며 즐겼다. 이러한 환경 덕분에 그는 예술적 감수성을 키울 수 있었다.
부모님의 열린 사고, 감독 봉준호를 만들다

한편 어린 시절부터 영화를 사랑했던 그는 12살 때부터 영화감독의 꿈을 품었다. 당시 이장호, 배창호 감독을 보며 영화학과를 나오지 않아도 감독이 될 수 있음을 깨달았다.
하지만 부모님의 지원이 없었다면 이 꿈은 이룰 수 없었을지도 모른다. 당시에는 많은 부모가 자녀의 예술적 꿈을 반대하는 시대였기 때문이다.
그러나 봉준호의 부모는 달랐다. 그가 영화감독이 되고 싶다고 했을 때 “쓸데없는 짓 말고 공부나 하라”고 말하기는커녕, “하고 싶은 것은 다 해봐라”며 전폭적인 지원을 아끼지 않았다. 그 덕분에 봉 감독은 스스로의 길을 개척할 수 있었다.

그렇게 조용하고 내성적이었던 한 소년은 50년 후, 기생충으로 아카데미 시상식을 석권하고, 미키 17으로 할리우드를 다시 한번 뒤흔들었다. 마치 세상을 바꾼 그의 영화처럼, 봉준호 감독의 인생도 한 편의 영화 같은 삶을 이어가고 있다.
난투극