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배터리 3사, 미국서 반격 시작
중국 저가 공세 속 기회 포착
LFP 현지 생산으로 판도 바꾼다

“중국 기업들이 가격으로 누르던 시대가 끝나가고 있다”
한국 배터리 업계 관계자가 최근 미국 시장을 두고 한 말이다. 그동안 저가 공세로 글로벌 시장을 석권해온 중국 배터리 기업들에게 예상치 못한 복병이 나타났다. 바로 미국의 보호무역 정책과 한국 기업들의 현지화 전략이다.
미국이 던진 승부수, 한국 기업에 기회

15일 업계에 따르면 국내 배터리 빅3가 미국을 무대로 중국과의 한판 승부를 준비하고 있다. 특히 주목할 점은 그동안 중국이 독식해온 리튬인산철(LFP) 배터리 시장에 본격 진출한다는 것이다.
LG에너지솔루션과 GM의 합작사인 얼티엄셀즈가 테네시주 스프링힐 공장의 생산라인을 LFP 배터리용으로 전환하기로 했다. 올해 말 개편을 시작해 2027년 말 양산을 목표로 한다. 미국 내 LFP 배터리 생산은 국내 기업 최초다.
SK온도 움직이고 있다. 최근 엘앤에프와 배터리용 양극재 공급 협약을 맺고 북미 생산라인 전환을 추진 중이다. 삼성SDI 역시 울산에서 ESS용 LFP 배터리 설비 구축을 진행하며 내년 상반기 양산을 준비하고 있다.
중국의 아킬레스건, 미국의 견제
전 세계 LFP 배터리 생산의 70~80%를 차지하는 중국 기업들. CATL, BYD 같은 거대 기업들이 압도적인 가격 경쟁력으로 시장을 지배해왔다. 하지만 미국 시장에서는 상황이 다르다.

인플레이션 감축법(IRA)과 최대 45%에 달하는 관세 폭탄이 중국 기업들의 발목을 잡고 있다. 중국산 부품과 광물을 사용하면 보조금에서 제외되는 정책도 직격탄이 됐다.
중국 기업들은 직접 진출 대신 우회 전략을 펼치고 있다. CATL은 테슬라 네바다 공장에 기술과 장비를 제공하는 방식으로, BYD는 ESS 분야를 중심으로 간접 진출을 시도 중이다. 하지만 이런 방식으로는 시장 지배력을 유지하기 어렵다는 게 전문가들의 분석이다.
기술력과 현지화로 승부
한국 기업들이 LFP 시장에서는 후발주자다. 하지만 승산이 없는 것은 아니다. 오히려 삼원계 리튬이온 배터리에서 쌓은 기술력이 새로운 무기가 되고 있다.
LG에너지솔루션은 이미 지난해부터 ESS용 LFP 배터리를 성공적으로 양산하고 있고, 올해 2분기부터는 미시간주 홀랜드 공장에서도 생산을 시작했다.

무엇보다 큰 강점은 미국 현지 생산 체제다. 한국 기업들은 대규모 투자를 통해 미국 내 공장을 건설하고 소재 현지화를 추진하고 있다. 이는 미국 정부의 세제 혜택과 보조금을 받을 수 있어 가격 경쟁력 확보에도 유리하다.
배터리 업계 전문가는 “미국의 현지 공급망 구축 기조가 한국 기업들에게는 절호의 기회가 되고 있다”고 평가했다. 특히 AI 데이터센터 확장으로 ESS 수요가 급증하면서 시장은 더욱 커지고 있다.
보급형 전기차 시장 확대도 한국 기업들에게는 기회다. 그동안 고가 프리미엄 배터리에 집중했던 한국 기업들이 LFP 배터리로 제품군을 확대하면서 시장 전체를 아우를 수 있게 됐다.
앞으로 미국 시장에서의 한중 배터리 경쟁은 더욱 치열해질 전망이다. 하지만 현지화와 기술력, 그리고 미국 정부의 지원을 등에 업은 한국 기업들이 판도를 바꿀 가능성이 높아 보인다. 중국에 밀려 고전하던 한국 배터리 업계가 미국에서 반격의 깃발을 올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