물류 요충지 알헤시라스에 韓 투자 확대
HMM, 터미널 확장·운영권 연장 승부수
글로벌 해운 판 흔드는 ‘자주 물류’ 전략

서울 한강 폭의 약 14배. 지중해와 대서양을 잇는 이 좁은 해협은 세계 물류의 숨은 지배자다.
가장 좁은 구간이 14km에 불과하지만, 전 세계 해상 물동량의 10%가 이 길을 통과한다. 아시아, 유럽, 아프리카, 미주를 잇는 ‘세계 해운의 관제탑’인 셈이다.
바로 이 전략적 요충지, 스페인 알헤시라스항에서 한국이 글로벌 물류의 주도권을 확보하기 위한 거대한 승부수를 띄웠다.
“스페인 물류 요충지서 주도권 잡았다”…HMM의 대담한 승부수
그 중심에는 HMM이 운영하는 알헤시라스 터미널(TTIA)이 있다.

HMM은 2028년까지 터미널 면적을 현재의 1.5배로 확장하고, 연간 처리 물동량 역시 기존 160만 TEU(20피트 컨테이너 단위)에서 최대 280만 TEU까지 획기적으로 늘릴 계획이다.
설비 투자에 그치지 않고, 터미널 운영권도 기존 2043년에서 2065년으로 22년 연장하며 장기적인 주도권 확보에 쐐기를 박았다.
겉으로는 시설 확충에 불과해 보일 수 있지만, 그 이면에는 한국이 글로벌 물류 동맥의 운영권을 직접 쥐겠다는 전략적 포석이 깔려 있다.
이는 특정 국가의 항만 정책이나 급변하는 국제 정세에 휘둘리지 않고, 한국 수출입 기업들이 안정적으로 물류를 운용할 수 있는 ‘자주적 물류 영토’를 확보하는 것과 같다.

코로나19 팬데믹 당시 전 세계 공급망이 마비되며 우리 기업들이 겪었던 물류 대란의 아픈 기억을 떠올린다면, 이번 투자의 함의는 더욱 선명해진다.
전략적 가치뿐만 아니라 경제적 실익도 상당하다. 업계 평균을 기준으로 추산할 때, 확장이 완료되면 HMM은 이 터미널에서만 연간 약 520억 원의 영업이익을 거둘 것으로 기대된다.
“흐름을 지배해야 판을 바꾼다”…HMM, 물류 주도권 선점
HMM이 과반의 지분을 보유한 만큼, 수익의 상당 부분이 한국으로 유입되는 구조다.
특히 이 터미널이 세계 3위 선사인 프랑스 CMA CGM과의 공동 개발 형태로 추진된다는 점도 주목할 만하다.

이는 국적선사가 글로벌 해운 동맹의 틀을 넘어 독자적인 전략적 영향력을 발휘하고 있음을 보여주는 방증이다. 단기 이익이 아닌, 수십 년을 내다보는 장기적 수익성과 자산 가치를 보고 내린 결정인 것이다.
지브롤터 해협 길목에서 HMM이 벌이는 이 움직임은, 조용하지만 거대한 물류 전쟁의 서막을 알리는 신호탄이다.
거대 선박들이 쉴 새 없이 오가는 이 좁은 해협에, 한국은 미래를 담보할 전략적 자산을 차곡차곡 쌓아 올리고 있다.
흐름을 지배하는 자가 판을 바꾼다는 말처럼, 세계 물류의 가장 중요한 흐름 한복판에 한국이 닻을 내리기 시작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