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곳 중 8곳 레드오션 직면
신사업 추진은 절반도 못해
중국발 공급과잉 직격탄

최근 한국 제조업이 전례 없는 위기에 빠졌다.
10곳 중 8곳이 주력 사업 경쟁력을 잃었다고 인정했지만, 새로운 먹거리를 찾아 나선 곳은 절반에도 못 미친다.
중국발 공급과잉 쓰나미가 한국 제조업 전반을 강타하면서 생존 자체가 위태로운 상황이다.
82%가 인정한 충격적 현실
대한상공회의소가 4일 발표한 조사 결과는 한국 제조업의 민낯을 적나라하게 드러냈다. 전국 제조업체 2186개사를 대상으로 한 설문에서 82.3%가 자사 주력 제품이 시장 포화 상태이거나 경쟁우위를 상실한 레드오션에 접어들었다고 답했다.

구체적으로 살펴보면 54.5%가 시장 포화 상태인 ‘성숙기’, 27.8%는 시장이 줄어드는 ‘쇠퇴기’라고 진단했다. 반면 수요가 늘어나는 ‘성장기’는 16.1%, 시장 형성 초기인 ‘도입기’는 고작 1.6%에 그쳤다.
업종별 위기 수준은 더욱 심각했다. 비금속광물 업종의 95.2%가 성숙·쇠퇴기라고 답했고, 정유·석유화학, 철강이 뒤를 이었다.
기계, 섬유, 자동차·부품, 식품, 전자 등 한국 경제 핵심 업종들도 모두 80%를 넘는 비율로 위기 상황임을 인정했다.
신사업 못 찾는 이중고
미래 먹거리 확보는 더욱 막막한 상황이다. 현재 주력 제품을 대체할 신사업을 추진하거나 검토 중인 기업은 42.4%에 머물렀다. 절반이 넘는 57.6%는 아예 진행 중인 신사업이 없다고 털어놨다.

신사업 추진이 어려운 이유로는 ‘자금난 등 경영 상황 악화’가 가장 많았다. ‘신사업 시장·사업성 확신 부족’, ‘신사업 아이템을 발굴하지 못했다’는 응답도 비슷한 수준이었다.
신사업을 시작한다 해도 험로가 기다리고 있다. 추진 과정 애로사항으로 ‘신사업 시장 전망 불확실성’을 47.5%가 꼽았다. 미중 무역 갈등과 내수 침체 장기화가 불안 요소로 작용하고 있는 것으로 분석된다.
중국이 키운 ‘글로벌 공급과잉’의 늪
한국 제조업이 이런 어려움에 빠진 근본 원인은 글로벌 공급과잉이다. 경제협력개발기구는 철강의 지난해 전 세계 과잉생산 능력이 6억 3000만 톤에 달했다고 발표했다.
2027년에는 과잉 규모가 7억 톤을 넘어설 것이라는 전망도 나왔다. 우리나라의 작년 조강생산량 6300만 톤의 10배가 넘는 규모다.

석유화학 업종도 마찬가지다. 보스턴컨설팅그룹은 향후 2~3년 동안 1500만톤 규모의 신규 공장이 가동될 예정이라며, 2030년까지 공장 가동률 하락이 지속될 것이라고 내다봤다.
이러한 글로벌 공급과잉은 중국의 대규모 생산 확장에서 비롯되었으며, 전 세계 시장의 가격 하락과 기업 경영난을 부추기고 있다.
이런 상황이 계속되면 경제 성장률 둔화, 기업 수익성 악화, 무역 갈등 심화 등의 문제가 연쇄적으로 발생할 수 있다. 일본의 장기 침체 사례처럼 과도한 투자에서 비롯된 부채 문제가 경제 전반의 불안을 키울 가능성도 제기된다.
대한상의는 첨단산업 육성을 위한 투자 직접환급제 도입, 제조 인공지능 도입을 위한 AI 특구 지정, 인내자본 마련 등 장기적인 지원 정책이 필요하다고 제언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