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성비 끝판왕’이던 일본, 그 위상이 흔들려
엔저 약발은 사라지고 물가 오르기만
싸다는 이유 하나로 떠나는 시대는 끝나

한국인의 ‘최애’ 여행지였던 일본의 위상이 흔들리고 있다. 불과 몇 년 전만 해도 쉽게 상상하기 어려웠던 변화다.
2023년, 해외로 떠난 한국인 여행자 3명 중 1명이 일본을 찾았고, SNS에는 “이렇게 저렴하게 일본을 즐길 수 있다니!”라는 극찬이 쏟아졌다.
실제로 같은 해 기준, 오사카를 방문한 외국인 관광객 중 한국인이 24.5%를 차지하며 단연 1위를 기록했다.
그러나 이제, 그 절대적 공식에 균열이 생기며 일본 관광업계에도 비상등이 켜진 것이다.
도쿄·오사카 대신 ‘덜 붐비는 일본’ 찾는 여행객들

대체 왜 이런 변화가 시작된 걸까? 문제의 시작은 환율이었다. 그동안 일본 여행의 절대적 무기였던 ‘엔저’가 힘을 잃고 현지 물가도 덩달아 오르기 시작한 것이다.
최근 조사 결과는 더욱 충격적이다. ‘여행 비용 때문에 일본을 선택한다’는 응답이 뚜렷하게 줄었다.
한때 일본을 찾는 가장 큰 이유였던 ‘저렴한 비용’이라는 공식이 깨지면서, 더는 ‘가성비 1등’ 타이틀만으로 여행자를 붙들 수 없는 상황이 됐다. “가깝고 익숙한데도 망설인다”는 목소리가 곳곳에서 들려온다.
그렇다고 일본의 인기가 완전히 꺾인 것은 아니다. 일본을 향한 여행 수요 자체는 여전히 견고하지만, 그 방식과 목적지가 달라지고 있다.

도쿄와 오사카 같은 대도시 대신 후쿠오카, 삿포로, 오키나와 같은 소도시나 휴양지로 향하는 발길이 늘었다.
현지 물가 부담이 비교적 덜하고 관광객 밀집으로 인한 불편도 적은, 이른바 ‘덜 붐비는 일본’이 새롭게 주목받고 있는 것이다.
중국·동남아 뜨자 흔들리는 일본, 설득력 시험대에
배경에는 단지 환율만 있는 게 아니다. 코로나 이후 여행에 대한 인식 자체가 바뀌었다.
무작정 먼 곳보다 가볍게 다녀올 수 있는 ‘근거리·단기간 여행’이 더 매력적으로 다가왔다. 여기에 오버투어리즘 피로감, 국내 경기 위축 등이 더해지면서 소비자들은 점점 ‘작고 효율적인 여행’으로 눈을 돌리고 있다.

특히 일본의 고민을 더 깊게 만드는 건 경쟁 목적지들의 급부상이다.
최근 중국은 비자 면제 조치를 계기로 여행 수요가 급증했고, 베트남과 태국 역시 꾸준히 강세를 보이고 있다. 여행의 선택지가 다양해지고 비교 기준도 높아지면서, 여행 시장이 더 다양해지고 있다.
일본은 여전히 한국인에게 가장 친숙한 여행지다. 하지만 그 친숙함이 관성으로 이어질지는 미지수다. ‘가성비’라는 단일한 매력이 흔들리는 지금, 일본은 자신만의 새로운 설득력을 찾아야 할 시점에 와 있다.
‘싸니까 간다’는 시대는 확실히 저물고 있다. 여행자는 더 이상 싸다는 이유만으로 떠나지 않는다. 그 무엇이 이 여정에 진짜 가치를 더해줄 수 있을지, 일본이 던져야 할 질문은 분명해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