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즐겨 먹었는데 어쩌나”… 줄줄이 사라질 위기에, 서민들 ‘초비상’

온난화로 사과 재배 위기
2050년 강원도서만 재배 가능
물가 상승까지 덮치는 기후 위기
사과
출처 : 연합뉴스

“고온 때문에 이제 평지 농사 못 지을 것 같다.”

충주에서 평생 사과 농사를 지어온 이종관씨의 한마디가 한국 농업의 현실을 보여준다. 연일 30도를 넘나드는 폭염 속에서 사과 열매가 햇볕에 타버리는 모습을 지켜보며 그는 깊은 한숨을 내쉬었다.

한때 ‘명품 사과’의 대명사였던 충주산 사과가 기후변화 앞에서 속수무책으로 무너지고 있다. 일조량이 풍부하고 일교차가 큰 최적 조건을 갖춘 충주는 2003년과 2005년 한국농수산식품유통공사의 파워브랜드상을 받을 만큼 품질을 인정받았다.

충주원예농협 전일도 상무는 “품질이 뛰어나고 수도권과 가까워 없어서 못 팔 정도로 소비자들의 사랑을 받아왔다”고 말했다.

불타는 사과밭, 급변하는 기후

사과
사과 재배 위기 / 출처 : 연합뉴스

하지만 지금 상황은 완전히 달라졌다. 예전엔 일소 피해가 드물었지만 작년과 올해는 피해를 본 농가가 급격히 늘었다. 섭씨 30도 이상의 고온이 계속되면 사과나무 성장이 멈추고, 강한 햇빛에 장시간 노출되면 과일 표면이 불에 덴 것처럼 변색된다.

충주의 연평균 기온은 1990년 처음 12도를 넘어선 이후 계속 상승해 지난해에는 13.8도까지 치솟았다. 사과는 연평균 8-11도의 서늘한 환경을 선호하는 온대 과수인데 충주의 여름은 점점 길고 뜨거워지고 있다.

국립원예특작과학원 신민지 연구사는 “2050년대쯤에는 사과 재배 적합 지역이 강원도 북부 고지대로 이동할 가능성이 크다”고 전망했다.

‘과수 구제역’ 화상병까지 덮쳐

기후 변화는 병해 발생에도 악영향을 미치고 있다. 최근 몇 년간 충북 일대 과수원에서는 과수화상병이 창궐해 막대한 피해를 냈다. 감염되면 잎과 줄기가 불에 탄 듯 변하며 말라 죽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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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과 재배 위기 / 출처 : 연합뉴스

과수화상병 세균은 겨울철 나무에 숨어 있다가 습기가 많고 기온이 오를 때 활동을 시작한다. 충주는 2018년 첫 발생 이후 올해까지 누적 피해 면적이 356.9헥타르에 달한다. 감염된 과수를 매몰한 후에도 병균이 토양에 잠복해 2년 동안 같은 작목을 심을 수 없다.

이런 복합적인 요인들로 충주의 사과 재배면적은 급속히 줄고 있다. 2018년 1898헥타르로 정점을 찍은 재배면적은 현재 955.3헥타르까지 쪼그라들었다. 불과 7년 만에 50%가 사라진 것이다.

서민 밥상까지 위협하는 온난화

농촌진흥청 사과연구센터 분석에 따르면, 현재 속도의 온난화가 계속될 경우 국내 사과 재배지는 2030년부터 점차 줄어들기 시작해 2050년에는 강원도에서만 재배가 가능해질 전망이다. 2070년에는 국내에서 사과 재배가 거의 불가능해질 것으로 예상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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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과 재배 위기 / 출처 : 연합뉴스

이런 변화는 이미 현실이 되고 있다. 한반도 아열대화가 가속화되면서 사과, 배, 포도 등 온대과일 재배 면적이 30년 사이 30% 이상 급감했다. 재배지가 북상하고 생산량이 줄면서 공급이 수요를 따라가지 못해 사과 가격이 크게 오르고 있다.

이런 농산물 공급 감소는 물가에도 직접적인 타격을 주고 있다. 독일 포츠담기후영향연구소 연구에 따르면, 기후변화로 인한 식량물가 상승률이 2035년까지 연간 최대 3.2%포인트 상승할 수 있다. 온난화가 식량뿐 아니라 전반적인 물가에도 중장기적 상승 압력을 가할 것이라는 전망이다.

충주시는 이런 위기에 맞서 고온과 병해에 강한 국산 품종 ‘이지플’을 농가에 보급하고 있다. 이지플은 저장성이 좋고 병해에 강해 기존 품종보다 상품성이 높다. 올해 11헥타르 수준이지만 2030년까지 재배면적을 100헥타르로 늘릴 계획이다.

시는 또한 2030년까지 전체 재배 면적을 2520헥타르로 늘려 사과 주산지의 명성을 되찾겠다고 밝혔다. 하지만 기후변화 속도를 생각하면 농업 기술 혁신, 수입 확대 등 근본적인 대책 마련도 시급한 상황이라고 전문가들은 조언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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