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더미처럼 쌓이는데”…’혈세 370억’이 봉투째 쓰레기통으로?

뜯지도 않고 버려지는 공보물, 4,700만 부
370억 세금 들였지만 정보 전달은 실종
“받을지 말지 선택권 줘야” 목소리 확산
우편함 선거공보물
출처: 연합뉴스

“아예 안 받겠다고 선택할 수 있으면 좋겠어요.”

서울 강동구에 거주하는 직장인 김모(34)씨는 우편함에서 꺼낸 대통령 선거공보물을 그대로 종이 쓰레기함에 넣으며 고개를 저었다.

이미 후보자들에 대한 정보는 유튜브와 SNS를 통해 충분히 접했다는 그는, 열어보지도 않은 책자형 공보물이 그저 세금 낭비처럼 느껴졌다고 했다.

김씨는 “요즘 같은 시대에 종이로 공보물을 다 보내는 게 과연 효율적인지 모르겠다”며 “필요한 사람만 받게 하면 환경도 아끼고 예산도 줄일 수 있지 않겠냐”고 말했다.

370억 들여 만든 공보물, 대다수는 뜯지도 않고 버려졌다

우편함 선거공보물
출처: 연합뉴스

누군가의 우편함에 꽂힌 선거공보물이, 뜯지도 않은 채 그대로 분리수거장으로 직행한다. 제21대 대통령 선거를 앞두고 전국에서 반복되는 이 풍경은 개인의 무관심을 넘어 사회 전체의 낭비를 보여준다.

이번 대선에서 발송된 종이 공보물은 약 4,700만 부. 그 제작과 발송에 든 세금은 370억 원에 달한다. 문제는 이 거대한 자원이 수많은 가정에서 아무런 역할도 하지 못한 채 폐지로 사라지고 있다는 점이다.

많은 유권자들은 이미 온라인에서 후보자의 이력과 공약을 충분히 파악하고 있다. 유튜브와 SNS는 정보를 빠르게 전달하고, 관심 있는 내용만 골라볼 수 있다. 특히 젊은 세대는 종이 공보물 자체를 시대에 뒤떨어진 방식으로 본다.

“이미 알고 있는 내용을 굳이 책자까지 받아야 하냐”는 반응이 나오는 이유다. 정치적 입장이 뚜렷한 이들은 자신이 지지하지 않는 후보의 공보물은 펼쳐보기도 꺼린다.

우편함 선거공보물
출처: 연합뉴스

물론 종이 공보물이 여전히 유용하다고 느끼는 이들도 있다. 일부 고령층은 후보자의 경력, 공약, 전과 기록 등을 비교하는 데 책자형 공보물이 도움이 된다고 말한다.

그러나 이들 중에서도 “누구를 찍을지 이미 정해뒀다”며 그대로 버리는 사례가 적지 않다. 결국 공보물이 실제로 읽히는 경우는 많지 않다.

수천만 부의 낭비, 이젠 방식 자체를 바꿔야 할 때

전자공보물 도입을 위한 법안은 이미 국회에 제출됐지만, 발송 시기 문제나 개인정보 제공 우려로 통과되지 못했다.

유권자는 여전히 선택권 없이 종이 공보물을 받아야 하고, 관심이 없더라도 쓰레기를 만들어야 한다. 이런 구조는 정보 전달보다 오히려 불필요한 부담을 더한다.

우편함 선거공보물
출처: 연합뉴스

전문가들은 카드사나 통신사처럼 수령 방식을 유권자가 직접 선택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고 지적한다. 종이가 필요한 사람만 받게 하고, 나머지는 온라인으로 대체하면 된다. 이미 유럽 일부 국가는 이 방식을 도입해 시행 중이다.

선거공보물은 유권자와 후보자를 잇는 중요한 매개다. 하지만 수천만 부가 열어보지도 않고 버려지는 현실은 이 매개가 제 기능을 못 하고 있음을 보여준다. 지금 필요한 건 방식을 바꾸는 일이다.

시대가 바뀐 만큼, 정보 전달의 방식도 바뀌어야 한다. 유권자에게 선택할 권리를 돌려주는 것, 그것이 가장 먼저 바꿔야 할 출발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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