갚을 수 있어도 빚이 줄었다…새출발기금의 관대한 기준
변제 능력 충분한 채무까지 함께 감면된 구조적 허점
재산 검증 빈틈 속 제도 신뢰, 다시 시험대에 올랐다

코로나19 이후 벼랑 끝에 몰린 자영업자의 재기를 돕겠다며 출범한 새출발기금이 예상치 못한 질문 앞에 서게 됐다.
정말 갚기 어려운 사람을 돕고 있는지, 아니면 갚을 수 있는 채무까지 함께 덜어주고 있는지에 대한 물음이다. 최근 공개된 감사 결과는 이 제도가 어디까지 관대해졌는지를 보여준다.
갚을 수 있어도 감면됐다…상환 가능 차주까지 넓어진 지원선
새출발기금은 소득으로 채무를 감당하기 어려운 자영업자를 대상으로 채무를 줄이거나 상환 기간을 조정해 재기를 돕는 제도다.
그러나 감사 결과를 들여다보면 취지와 다른 장면들이 포착된다. 변제 가능률이 100%를 넘는 차주 1900여 명이 총 840억 원의 원금을 감면받았다. 현재 소득만으로도 채무 전액 상환이 가능한 경우임에도 빚이 줄어든 사례다.

이 같은 결과는 제도 설계에서 비롯됐다. 새출발기금은 변제 가능성이 일정 수준을 넘으면 감면율을 세밀하게 나누지 않고 비슷한 기준을 적용해 왔다. 그 결과 상환 능력 차이가 크더라도 감면 폭은 크게 달라지지 않았다.
실제로 변제 가능률이 100% 이상인 경우에도 원금의 상당 부분이 감면되는 구조가 만들어졌다. 결국 빚을 실제로 갚을 수 있는지보다, 제도의 기준 안에 들어왔는지가 더 중요해진 상황이 된 셈이다.
여기에 재산 파악의 한계도 겹쳤다. 가상자산이나 비상장주식처럼 포착이 어려운 자산은 감면 심사에 충분히 반영되지 못했다.
신청 전후로 재산을 가족에게 넘기는 경우 역시 사전에 걸러내기 쉽지 않았다. 감사 과정에서는 수억 원대 가상자산을 보유하거나, 감면 전후로 고액 증여가 이뤄진 사례도 확인됐다.

이 과정에서 생활이 곤궁하다고 보기 어려운 차주들이 제도 안으로 유입됐고, 소득 수준과 무관하게 변제 능력 자체가 충분한 채무까지 함께 정리됐다는 지적이 나온다.
느슨한 검증, 흔들리는 신뢰…제도 보완 과제로
고소득 감면 사례보다 더 본질적인 문제는 상환 여력을 가려내는 장치가 느슨하게 작동했다는 점이다.
물론 자영업자의 소득은 변동성이 크다. 한때 벌이가 좋아 보여도 언제 다시 어려워질지 알 수 없다는 반론도 있다. 그럼에도 재기를 돕는 안전망이 채무 부담을 가볍게 만드는 통로로 비칠 경우, 제도에 대한 신뢰는 흔들릴 수밖에 없다.
정부와 관계 기관은 감면 기준과 재산 조사 방식 개선을 예고했다. 고의적 재산 이전이 드러나면 약정을 해지하겠다는 방침이다. 제도가 본래 취지에 가까워질 수 있을지는 실행에 달려 있다. 아직 안심하기는 이르다. 향후 운영 변화를 지켜볼 필요가 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