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TV 태동과 함께한 배우 이순재 별세
연극·스크린·국회를 넘나든 경계 없는 삶
90대까지 연기를 붙든 ‘영원한 현역’의 울림

한국 대중문화의 살아있는 역사로 불렸던 배우 이순재가 91세를 일기로 세상을 떠났다.
그의 이름은 오랫동안 드라마와 연극 무대, 예능과 정치의 현장을 오가며 세대를 초월해 회자되어 왔다.
그는 늘 자신을 “아직도 배울 게 많은 배우”라 표현했지만, 대중이 기억하는 그는 한국 텔레비전의 태동과 함께 성장한 산증인이었다.
1956년 연극으로 데뷔한 뒤 70년에 가까운 세월 동안 한 장르에 머물지 않고 세계를 확장해온 그는, 어떤 시대에도 ‘현역’이라는 말이 어색하지 않은 인물이었다.
연극에서 국회까지… 이순재가 걸어 올린 ‘경계 없는 삶’

그의 여정을 떠올리면 한 사람이 어떻게 이토록 다양한 세계를 거쳐갈 수 있었는지 되묻게 된다. 연극 무대에서 시작해 브라운관과 스크린을 넘나든 배우로 살았고, 1990년대 초반에는 국회의원으로까지 활동하며 전혀 다른 무대에 뛰어들었다.
유명 연예인의 정치 진출이 흔치 않던 시절이었기에, 그의 선택은 많은 이들의 관심과 논쟁을 불러왔다.
그럼에도 그는 정치적 입장이나 논란보다 ‘책임’이라는 단어를 앞세웠고, 임기를 마친 뒤에는 다시 배우로 돌아와 생활의 중심을 연기 작업에 두었다.
그가 남긴 무게감은 단순히 경력의 길이나 이력의 화려함 때문만이 아니다.

열 살을 겨우 넘긴 나이에 전쟁을 겪고, 서울로 피난해 생계를 위해 비누 장사를 해야 했던 어린 시절은 그에게 평생의 태도를 만들었다. 맡은 일을 결코 가볍게 여기지 않는 자세였다.
촬영장에서 후배들과 똑같이 대기하고, 대사를 외우지 못하는 신인을 꾸짖으면서도, 예능에서는 손주 같은 출연자들을 따뜻하게 챙기는 모습이 자연스러웠다. 후배들이 그를 ‘큰어른’이라 불러온 것도 이런 맥락이었다.
90대까지 무대에 선 ‘영원한 현역’, 그를 지탱한 한 문장
이순재가 대중에게 남긴 이미지는 언제나 한 가지였다. 나이가 들어도 일을 쉬지 않는 사람. 그는 “배우에게 연기는 생명력”이라는 말을 자주 했고, 실제로 80대와 90대에도 기나긴 공연을 소화하고 새로운 배역을 맡았다.
스스로를 꾸준히 단련하며, 후배들의 연기를 평가할 때조차 매번 “연기는 완성이 없다”고 말하던 모습에서 그의 태도가 드러난다.

연기론을 향한 깊은 이해, 세대가 잊어버린 장단음·모음 체계를 유지한 정확한 발성, 시대의 변화를 흡수하면서도 무너지지 않는 원칙들은 그만의 고유한 자산이었다.
그의 사망 소식이 전해진 뒤 많은 이들이 가장 먼저 떠올린 순간은 예능 프로그램에서 보였던 위트, 혹은 후배 배우들을 감싸 안던 따뜻한 언행이었다.
하지만 무엇보다도, 그는 스스로의 삶을 ‘끝까지 버티는 일’로 설명하곤 했다. 시대의 격변 속에서도 자신의 직업을 붙든 한 배우의 일생은 한국 대중문화의 역사와 겹쳐지며 한 편의 긴 이야기로 남았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