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고차 매입 기준 대폭 완화
10년 연식까지 매물 확보
자동차 왕국 우려 목소리

완성차 브랜드가 중고차 시장까지 넘보는 시대다. 그리고 그 중심에는 현대차·기아가 있다.
한때는 중소업체 보호 명분 아래 4% 수준의 점유율 제한을 받았지만, 지난 5월부터 그 족쇄가 풀리자마자 판이 달라졌다.
현대차·기아는 연식과 주행거리 기준을 한층 완화하며, 타사 브랜드 차량까지 대거 매입하겠다는 포석을 깔고 있는 가운데 자동차 ‘왕국’을 현실로 만들겠다는 야심이 본격화되고 있는 것이다.
‘상생’ 대신 ‘확장’…기준 완화로 달라진 전략

처음에는 약속이었다. 현대차는 2023년 인증중고차 사업을 본격화하며 ‘5년·10만㎞ 이내’의 자사 브랜드 차량만 취급하겠다고 했다.
이는 중기부 권고안에도 포함되지 않았던, 일종의 상생 카드였다. 그러나 올해 들어 이 기준은 ‘6년·12만㎞’로 바뀌었다. 럭셔리 브랜드 제네시스까지 포함되는 범위다.
타사 차량 매입 기준도 크게 달라졌다. 기존엔 ‘8년·12만㎞’였던 매입 조건을 ‘10년·15만㎞’까지 낮췄다. 브랜드와 관계없이 결함만 없으면 사들이겠다는 방침이다. 이는 업계에서 타사 중고차를 평가하고 유통하는 핵심 플레이어로 자리 잡으려는 의도다.

한 중고차 업계 관계자는 “과거 약속은 업계 반발을 잠재우기 위한 명분에 불과했던 셈”이라며 “사실상 현대차가 게임의 규칙을 새로 짜고 있다”고 말했다.
매물 확보…친환경차까지 진출

기준 완화로 확보 가능한 매물량이 크게 늘었다. 이와 함께 친환경차 중심의 매입 전략도 전개 중이다. 지난해 전기차를 매입 대상에 포함시킨 데 이어, 올해 6월부터는 수소차 넥쏘까지 들여오고 있다.
다만 타사 브랜드의 전기차나 영업용 화물차 등은 여전히 제외된다. 현대차는 매입한 차량을 272개 항목에 걸쳐 정밀 진단한 뒤, 소비자나 중고차 딜러, 수출업자에게 판매하고 수익을 남긴다.
이를 통해 완성차 품질이 전반적으로 향상되고 있으며, 10년 연식 중고차에 대한 수요가 오히려 늘고 있다는 점도 현대차에게는 호재다.

업계 한 관계자는 “매물 부족이 중고차 사업 확장의 가장 큰 걸림돌이었는데, 이제 그 벽도 사라졌다”며 “현대차는 중고차 시장에서 대량 공급자로 자리매김할 수 있게 됐다”고 말했다.
신차 판매까지 연결…진짜 노림수는 ‘순환 구조’

현대차가 노리는 건 단순한 중고차 판매 이상이다. 중고차 판매를 신차 구매로 연결하는 선순환 구조다. 예를 들어, 고객이 구형 넥쏘를 중고차로 넘기고 신형 넥쏘를 구매하면 최대 300만 원의 할인 혜택을 제공한다.
결국 현대차 차량 안에서 소비자를 묶는 전략이다. 또한 전동화 흐름에 따라 중고 전기차 시장도 커지고 있다. 현대차는 연식 2년 이상 된 전기차를 중심으로 매입해 재상품화하고 있다.
전용 전기차 플랫폼 E-GMP 기반 모델은 지난달까지 전 세계에서 100만 대 넘게 팔렸는데 중고 시장 역시 이 흐름을 따라갈 수밖에 없다.
전문가들 “자동차 왕국, 우려도”

한편 일각에서는 현대차의 행보를 우려하고 있다. 특히 타 브랜드 차량까지 수집하고 평가하는 구조가 경쟁업체에 악영향을 줄 수 있다는 분석이다.
업계 한 관계자는 “차량을 가장 잘 아는 제조사가 자사 브랜드 차량을 인증중고차로 판매하는 것은 이해되지만, 타 브랜드를 매입해 평가하고 유통까지 하면 시장 전체에 왜곡을 줄 수 있다”고 지적했다.
또한 “해외에선 차량 제작과 판매가 분리돼 있는 경우가 많지만, 한국은 현대차가 생산부터 유통까지 모든 과정을 장악하고 있다”며 “결국 자동차 생태계 전체를 지배하는 구조로 가는 것인데, 이는 장기적으로 문제가 될 수 있다”고 덧붙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