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유사 연봉 1억 5천, 반도체 넘었다
IMF 위기 딛고 60년 만에 정유 강국 도약
전기·수소로 전환, 새로운 활로 찾는다

“반도체보다 연봉이 높다니… 정유업계가 이렇게 돈을 잘 버는 줄은 몰랐다.”
연봉 1억 5천만 원대. 국내 4대 정유사 직원들이 받는 평균 급여 수준이다. 반도체 업계 최고 기업인 삼성전자(1억 3천만 원)와 SK하이닉스(1억 1,700만 원)의 평균 연봉도 뛰어넘는다.
최근 공시된 사업보고서에 따르면 에쓰오일의 2024년 직원 1인당 평균 급여는 1억 5,404만 원으로 확인됐으며, SK이노베이션 역시 1억 5,800만 원대의 평균 급여를 기록해 정유업계 고연봉 흐름을 이어갔다.
IMF 직격탄에도 굳건… 60년 만에 ‘정유 강국’으로 우뚝
정유산업의 연봉이 높은 배경에는 업계 특유의 구조가 깔려 있다. 원유 수입부터 휘발유·경유·항공유 등으로 정제하는 전 과정이 대규모 설비에 의존하며, 기술적 난이도도 높다.

여기에 국제 유가와 환율에 따라 수익성이 널뛰기하듯 크게 변동하기 때문에, 이를 안정적으로 운용할 전문 인력이 필요하고 자연스럽게 높은 보상이 뒤따른다.
한국 정유산업의 역사를 거슬러 올라가 보면, 1960년대 경제 개발이 본격화되면서 안정적인 에너지원 확보가 국가적 과제로 떠올랐다.
이때 1964년 대한석유공사(현 SK이노베이션의 전신)가 처음 설립됐고, 1967년에는 호남정유(현 GS칼텍스)가 전남 여수에서 정제시설을 돌리기 시작했다.
이어 현대정유(현 HD현대오일뱅크), 쌍용정유(현 에쓰오일)도 잇달아 가동을 시작했다. 특히 1976년 사우디아라비아 국영 석유기업 아람코와의 합작으로 탄생한 에쓰오일은 한국과 중동 간 협력의 상징이 됐다.

1997년 외환위기 때, 환율 급등과 경기 침체로 정유업계도 직격탄을 맞았다. 그러나 기업들은 정제 마진을 높이는 고도화 설비에 과감히 투자하고 석유화학 제품 수출로 활로를 찾으며 어려움을 돌파했다.
그 결과, 현재 한국 정유사는 세계 5대 정유 강국 중 하나로 꼽히며, 국제 시장에서도 높은 평가를 받고 있다.
‘검은 황금’도 녹색 옷 입는다… 전기·수소로 재도약
하지만 전기차·수소차 시대가 다가오면서 석유 수요가 변화하고 있고, 탄소중립 정책도 강화되는 추세다.
이에 따라 정유사들은 기존 석유사업에 머무르지 않고 신재생에너지, 친환경 화학, 배터리 사업 등으로 발 빠르게 영역을 넓히고 있다.

SK이노베이션은 전기차 배터리와 충전 인프라에 투자하고, GS칼텍스는 바이오 연료 개발에 힘쓰는 중이다.
에쓰오일은 아람코와 협력해 수소·화학 분야를 강화하고 있으며, HD현대오일뱅크 역시 친환경 정유공정 기술을 개발하고 있다.
한때 ‘검은 황금’이라 불리며 산업의 중심에 섰던 석유. 그 시대가 서서히 변하고 있다. 변화하는 에너지 시장 속에서 정유업계는 새로운 활로를 모색하고 있으며, 앞으로 어떤 방향으로 나아갈지 주목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