블랙핑크, 웸블리 9만 명을 핑크빛으로 물들이다
스트리밍 한계론 넘은 K팝, 투어·피지컬로 증명
국가 브랜드 이끄는 소프트파워, K팝은 슈퍼 IP

런던 웸블리 스타디움이 핑크빛으로 물든 밤, K팝의 역사가 새로운 챕터로 넘어갔다.
퀸의 ‘라이브 에이드’와 마이클 잭슨의 전설이 깃든, 아티스트 커리어의 정점으로 인식되는 이 상징적 공간에 한국 걸그룹 블랙핑크가 주인공으로 섰다.
2019년 방탄소년단이 열었던 길을 따라 6년 만에 입성한 것이자, K팝 여성 그룹으로서는 최초로 세운 금자탑이다.
언어의 장벽을 무너뜨린 9만 석 규모의 한국어 떼창과 거대한 공간을 가득 채운 응원봉의 물결은, K팝이 이제 세계 대중음악의 중심부에서 자신만의 규칙을 써 내려가고 있음을 알리는 분명한 선언이었다.
웸블리의 함성, 블랙핑크가 보여준 또 다른 시작

무대 위 블랙핑크는 지난 2년간의 공백이 단순한 휴지기가 아닌, 그룹의 외연을 확장하기 위한 전략적 다변화의 시간이었음을 스스로 증명했다.
쉴 틈 없이 이어진 히트곡 퍼레이드 속에서 멤버 각자의 정체성을 녹여낸 솔로 무대는 그룹의 스펙트럼이 얼마나 넓어졌는지를 보여주었다.
특히 영국 출신의 실험적 아티스트 FKA 트윅스와의 깜짝 협업 무대는 단순한 팬 서비스를 넘어, 현지 음악계의 존중과 예술적 시너지를 상징하는 장면으로 SNS를 통해 빠르게 확산됐다.
디지털 스트리밍 수치로는 결코 환산할 수 없는, 수만 관객이 동시에 뛰며 만들어낸 바닥의 거대한 울림은 현장 교감의 압도적인 힘과 그 가치를 다시금 일깨웠다.

블랙핑크의 웸블리 입성은 ‘스트리밍 성장세 둔화’라는 일부 우려에 대한 K팝 산업의 가장 확실한 답변이기도 하다. 특정 플랫폼의 데이터만으로 K팝의 현재를 재단할 수 없음이 명백해졌다.
스트레이 키즈 등이 미국 CD 판매량 최상위권을 차지하는 강력한 코어 팬덤 기반의 피지컬 앨범 시장, 그리고 이번 공연처럼 막대한 수익을 창출하는 스타디움 투어는 K팝이 얼마나 견고하고 다층적인 수익 모델을 구축했는지 보여준다.
K팝, 국가 브랜드를 움직이는 소프트파워로
K팝의 영향력은 이제 산업계를 넘어 국가 브랜드 가치를 견인하는 핵심 소프트파워로 기능한다.
웸블리 공연장에서 9만 명이 느낀 강렬한 문화적 체험은 화장품, 식품, 기술 등 한국 제품 전반에 대한 긍정적 관심으로 이어진다.

최근 넷플릭스 애니메이션 ‘케이팝: 데몬 헌터스'(케데헌)의 세계적 흥행은 이러한 확장의 결정적 사례다. 이는 K팝의 음악뿐만 아니라 그 콘셉트와 세계관 자체가 국적을 넘어 통용되는 매력적인 ‘슈퍼 IP’로 진화했음을 보여준다.
결론적으로 블랙핑크의 웸블리 공연은 K팝 역사의 중대한 이정표로 기록될 것이다. 여성 그룹의 상업적 한계에 대한 편견을 깨고 새로운 기준점을 제시했으며, 디지털 지표 너머에 존재하는 K팝의 다각화된 생존 전략과 그 저력을 증명했다.
하나의 장르를 넘어 거대한 문화 현상으로 자리 잡은 K팝이 다음에는 어떤 경계를 허물며 세계를 놀라게 할 것인지, 이제 모두가 주목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