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UV가 수입차 시장 견인
볼보·푸조 전략도 힘 보태
기술·친환경 경쟁 본격화

스포츠유틸리티차(SUV) 열풍을 타고 수입차 판매량이 다시 가파르게 오르고 있다. 반면 국내 완성차 브랜드는 발목이 잡힌 채 1%대 성장에 그치며 극명한 온도차를 드러냈다.
한국자동차모빌리티산업협회(KAMA)는 2일, 올해 1~5월 국내 수입차 판매량이 전년 동기 대비 14.4% 늘어난 11만 7,735대를 기록했다고 밝혔다. 불황에도 SUV가 ‘효자’ 역할을 하면서 전체 실적을 견인한 것이다.
한편, 국내 브랜드의 같은 기간 내수 성장률은 1%에 그쳤다.
SUV가 바꾼 판도

올해 수입차 시장을 이끈 가장 강력한 동력은 단연 SUV였다. 아우디는 SUV 중심의 실적 개선이 두드러졌는데, Q3는 무려 370% 이상 판매가 증가했고, Q3 스포트백과 Q8도 각각 86%, 59.8% 늘어났다.
포르쉐도 마찬가지로 스포츠카 718과 911의 판매량이 감소했지만, SUV 모델인 마칸이 전년 대비 86.6% 늘며 전체 실적을 끌어올렸다.
BMW와 메르세데스-벤츠 역시 SUV 판매가 호조를 보였다. BMW는 SUV 판매가 14.1% 늘며 세단을 앞질렀고, 벤츠도 GLC 등의 SUV가 전년보다 12.8% 더 팔렸다.
조철 산업연구원 선임연구위원은 “SUV는 넉넉한 공간과 높은 시야로 운전이 편한 데다 최근 모델은 승차감까지 개선되면서 인기를 끌고 있다”고 분석했다.
브랜드 전략이 반등에 불을 붙이다

수입차 브랜드들은 SUV 판매 호조를 더욱 가속화하기 위해 공격적인 마케팅에 나섰다. 차량 구매 플랫폼 ‘겟차’에 따르면, BMW는 이달 520i M 스포츠 등 모델에 최대 10.3% 할인을 적용했다. 벤츠와 아우디도 최대 22.6%까지 할인 행사를 벌이고 있다.
자동차 업계 관계자는 “올해 들어 주요 브랜드들이 10~20%대 할인 프로모션을 지속해왔다”며 “내수 침체로 꺾인 실적을 끌어올리기 위한 전략”이라고 말했다.
이런 분위기 속에 주요 브랜드들의 신차 출시도 활발하다. 아우디는 8년 만에 완전변경한 Q5와 A5를, 볼보는 XC90과 S90의 부분변경 모델을 출시했다. 이들 모델은 SUV 강세 속에서도 고급감과 기술력을 앞세워 소비자에게 새로운 선택지를 제시하고 있다.
볼보, 프리미엄 기술로 차별화

볼보는 SUV 신차 출시에 더해 ‘기존 고객 챙기기’라는 전략으로 주목받고 있다. 2일 서울에서 열린 런칭 행사에서 볼보코리아는 약 6만 대의 기존 차량에 차세대 인포테인먼트 시스템을 무상으로 제공한다고 밝혔다.
신형 XC90·S90에 적용된 이 시스템에는 차량용 네이버 브라우저 ‘웨일’과 다양한 OTT, 음악 스트리밍 기능이 포함돼 있으며, 무선 업데이트(OTA)를 통해 순차적으로 설치된다. 총 70억 원 규모의 투자다.
이윤모 볼보자동차코리아 대표는 “기존 고객에게도 디지털 경험을 제공하겠다는 신념”이라며 “프리미엄 브랜드로서의 책임을 다하고자 했다”고 말했다.
하반기에는 이 두 모델을 기반으로 연간 2500대 이상 판매를 목표로 하고 있으며, 내년엔 전기 SUV EX90과 전기 세단 ES90도 순차 출시할 계획이다.
푸조, 친환경 SUV로 실속 공략

럭셔리 SUV가 시장을 주도하는 가운데, 푸조는 ‘실속형 친환경 SUV’로 또 다른 흐름을 만들고 있다. 스텔란티스코리아는 오는 11일부터 신형 3008 스마트 하이브리드를 국내에서 판매한다고 밝혔다.
이번 모델은 유럽에서 6개월 만에 10만 대 이상 판매되며 성공을 거둔 차량으로, 48V 기반의 하이브리드 시스템과 파노라믹 디스플레이 등 혁신적인 사양을 갖췄다. 연비는 복합 기준 리터당 14.6킬로미터다.
방실 스텔란티스코리아 대표는 “올 뉴 3008은 디자인, 기술, 가격 경쟁력을 모두 갖춘 모델”이라며 “국내 수입 SUV 시장에 새로운 바람을 불러일으킬 것”이라고 말했다.
고급화와 양극화의 기로

이호근 대덕대 미래자동차학과 교수는 “고급 수입차 수요는 여전히 탄탄하다”며 “실용적인 SUV와 프리미엄 모델이 동시에 주목받으며, 수입차 시장에서 양극화가 점점 더 뚜렷해지고 있다”고 진단했다.
내수는 침체지만 수입차는 호황. SUV라는 무기가 만든 이 역설적인 풍경은, 자동차 시장의 판도를 다시 짜고 있다. 올 하반기 수입차 브랜드들의 공세가 어떤 결과를 낳을지 주목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