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년 뒤 절반만 살아남을 것
126조원 시장 위기 직면”
산단 재편 불가피한 현실

“기업 절반이 3년 안에 사라질 수 있다.” 석유화학 업계에 드리운 먹구름이 걷히지 않고 있다.
중국의 대규모 증설로 공급 과잉이 심화되고, 글로벌 수요까지 줄어들면서 국내 석유화학 산업이 생존의 기로에 서 있다는 진단이 나오고 있다.
보스턴컨설팅그룹(BCG)의 분석에 따르면 현재의 불황이 지속될 경우 3년 후 국내 석유화학 기업 중 절반만이 지속 가능할 것으로 전망됐다. 이는 단순한 경기 침체가 아닌 산업 구조 자체가 흔들리는 위기 상황임을 의미한다.
중국 자급률 100% 달성, 최대 시장 잃어

한국 석유화학 산업의 위기는 중국발 공급 과잉에서 시작됐다. 중국이 대규모 설비 증설을 통해 석유화학 제품 자급률 100%를 달성하면서, 한국 기업들의 최대 수출 시장이었던 중국 수요가 급격히 줄어들었다.
김지훈 BCG 대표파트너는 2일 국회미래산업포럼에서 “동북아 내 에틸렌과 범용 폴리머 공급이 급증하며 2022년 이후 불황에 직면했다”고 진단했다. 그는 “추가 증설 없이도 2035년은 돼야 일반적 불황 수준을 회복할 것”이라며 장기 침체를 경고했다.
중동 산유국들도 원유를 그대로 수출하던 방식에서 벗어나 직접 석유화학 제품을 생산하는 쪽으로 전환하면서 글로벌 공급 과잉이 더욱 심화되고 있다. 이로 인해 국내 기업들은 원가 경쟁력에서 밀리고 있는 실정이다.
산단별 1-2개 업체만 살아남아

전문가들은 이번 위기를 극복하기 위해서는 산업단지별 대대적인 재편이 불가피하다고 입을 모았다. 현재 울산, 대산, 여수 등 3개 주요 산단에서 운영 중인 석유화학 기업들을 1-2개 업체 중심으로 통폐합해야 한다는 것이다.
김 파트너는 “경쟁력 확보를 위해서는 현재 대비 가동률을 최소 85% 수준으로 줄이고, 내수 및 고부가 중심으로 재편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성공적으로 재편될 경우 원가가 5% 정도 낮아져 경쟁력이 향상될 것으로 전망된다고 덧붙였다.
문제는 산단별로 특성이 다르다는 점이다. 울산산단은 2027년 샤힌 프로젝트로 인한 공급과잉이 예상되고, 대산산단은 범용 제품 비중이 95%에 달한다. 여수산단은 수출 기초유분이 많은 편이어서 각각 다른 재편 전략이 필요하다.
정부 지원 없인 한계 뚜렷
업계는 기업 자체 노력만으로는 구조조정에 한계가 있다며 정부의 적극적인 지원을 요청하고 있다. 특히 업체 간 협업이나 인수합병 과정에서 법적 규제와 자금 조달 문제가 걸림돌이 되고 있다는 지적이다.

김민우 롯데케미칼 전략기획본부장은 “사업 재편에 적극 참여하기 위해서는 독과점·담합 적용 유예, 공시 변경 특례 적용 등 법률 지원이 필요하다”고 건의했다.
김상민 LG화학 석유화학본부장도 “고부가가치·친환경적 구조 전환을 위한 세제, 재정 지원 확대가 필요하다”고 요청했다.
이에 대해 나성화 산업부 국장은 “사업재편 이행 과정에서 제기되는 금융·경쟁법·통상 이슈 등 애로사항을 반영해 후속 대책을 수립할 예정”이라고 답했다.
산업계에서는 “석유화학 산업이 올해·내년을 기점으로 공멸의 위기에 직면하고 있다”며 “임시방편이 아닌 과감한 사전 구조조정을 통해 미래 활로를 개척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다. 한국 석유화학 산업이 중국 의존에서 벗어나 새로운 성장 동력을 찾을 수 있을지 귀추가 주목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