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수산단 멈추자 도시는 일터를 잃었다
수출·고용·세수 모두 추락, 생계는 흔들
산단 의존의 한계… 구조개편 시급하다

“아침에 나와도 갈 데가 없어요, 그냥 차에 앉아 있다가 돌아갈 때도 많습니다.”
1967년 첫 삽을 뜬 뒤 58년 넘게 대한민국 산업의 심장으로 뛰던 여수국가산업단지(여수산단). 그 굴뚝에서 피어오르던 연기가 이제 눈에 띄게 옅어졌다.
공장을 드나들던 차량 행렬은 한산해졌고, 인근 휴게소 주차장은 운행을 멈춘 유조차들이 장기간 자리를 차지하고 있다.
멈춰 선 차량의 행렬은, 동력을 잃어가는 한국 석유화학 산업의 현주소를 상징적으로 보여준다.
고용 줄고 세수 반토막… 여수시, 결국 ‘고용위기’ SOS

산단의 가동률 저하가 불러온 한파는 지역 경제 전반으로 빠르게 확산되고 있다.
생산 라인이 멈추면서 협력업체들은 일감을 잃었고, 산단 근로자들의 발길이 뜸해진 인근 상권은 직격탄을 맞았다.
특히 무선지구 등 주요 상업지역의 중대형 상가 공실률은 뚜렷한 상승세를 보이고 있으며, 줄어든 유동인구에 자영업자들은 생존의 위협을 호소하고 있다.
고용 지표는 위기를 숫자로 증명한다. 2022년 2만 6,170명에 달했던 산단 고용인원은 올해 1분기 2만 4,686명으로 감소했다.

지역 경제의 버팀목이던 지방소득세 역시 1년 만에 약 49% 급감하면서, 결국 여수시는 정부에 고용위기지역 지정을 요청하기에 이르렀다.
수출 실적도 악화일로다. 올해 1분기 여수산단 수출액은 70억 달러로, 전년 동기 대비 13.3% 줄어들며 3분기 연속 하락세를 기록했다.
중국산 저가 제품의 공세와 글로벌 수요 부진, 그리고 좀처럼 반등하지 못하는 석유화학 제품 단가가 복합적으로 작용한 결과다.
버티는 기업들, 줄이고 팔고 줄인다… 공장도 사람도 ‘셧다운’
위기에 직면한 입주 기업들은 공정 가동을 최소화하고 비핵심 사업 매각과 인력 구조조정 등 생존을 위한 자구책 마련에 사활을 걸고 있다.

이번 침체는 석유화학이라는 단일 산업에 과도하게 의존해 온 지역 산업 구조의 한계를 여실히 드러냈다는 지적이 나온다.
특정 산업의 부진이 곧바로 지역 전체의 위기로 이어지는 취약한 구조 탓에, 일자리를 찾아 타지로 떠난 노동자들은 정착에 어려움을 겪고 물류 수요마저 장거리에서 인근 지역 중심으로 위축되는 악순환이 나타나고 있다.
업계 일각에서 여수 내 나프타분해설비(NCC)를 통폐합하는 등 생존 전략을 모색하고 있지만, 단기적인 회복을 기대하기 어렵다는 비관적 전망이 우세하다.
여수산단의 위기는 단일 산업단지를 넘어, 전통 제조업 중심 도시가 직면한 구조적 위기를 드러낸다. 더 늦기 전에 산업 고도화와 지역 경제 다변화를 위한 근본적인 체질 개선과 방향 전환이 시급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