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상 속 전기기기들이
우리 집을 위협하고 있다
전문가들이 경고하는 위험신호

예고도 없이 갑자기 터지고, 독성 가스를 내뿜는다. 일반 소화기로는 진화가 어려워, 순식간에 집 전체가 불길에 휩싸인다.
전문가들이 입을 모아 경고하는 이 위험은 다름 아닌 리튬 배터리의 부적절한 사용과 충전 때문이다. 일상 속 전기 이동기기들이 화재의 불씨가 될 수 있다는 사실이, 잇따른 사고로 확인되고 있다.
5년새 7배 늘어난 배터리 화재
소방청이 지난 18일 발표한 통계는 충격적이다. 최근 5년간 리튬 배터리 관련 화재가 총 678건 발생했다. 2020년 98건에서 시작해 2023년에는 179건까지 치솟았다.
화재의 대부분은 전동 킥보드와 전기 자전거에서 시작됐다. 전체 화재 중 485건이 전동 킥보드 배터리에서, 111건이 전기 자전거 배터리에서 발생한 것으로 집계됐다.

친환경 이동수단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면서 전기 자전거 시장 규모는 올해 약 70조 원에 달할 것으로 추산된다. 전동 킥보드 역시 국내 공유형 보급 대수만 29만 대를 넘어섰다.
물에 담그는 것만이 유일한 해결책
배터리 폭발 화재가 위험한 이유는 ‘열 폭주’ 현상 때문이다. 리튬 배터리 내부에서 양극과 음극을 분리하는 막이 터지면서 합선이 발생하고, 순식간에 수백 도의 고열이 발생한다.
채진 목원대 소방안전학부 교수는 “열 폭주로 인한 화재에는 마땅한 소화 약제가 없다”며 “일반 소화기로는 불이 잘 꺼지지 않는다”고 설명했다.
그렇다면 배터리 화재 발생 시 어떻게 대처해야 할까. 전문가들은 ‘오프가스’라는 전조 증상을 포착하는 것이 핵심이라고 강조한다.

오프가스는 리튬 배터리 온도가 급상승하며 열 폭주에 앞서 분출되는 가스다. 타는 냄새가 나거나 배터리가 부풀어 오르는 현상도 위험 신호다.
채 교수는 “오프가스를 포착하면 발 빠르게 욕조 등에 물을 채워 배터리를 넣어야 한다”며 “시간이 부족하다면 빠르게 대피하는 것이 좋다”고 조언했다.
인증 충전기 사용이 생명줄
화재 예방을 위해서는 정품 인증 충전기 사용이 필수다. KC 인증이나 UN38.3 같은 안전 기준을 통과한 전용 충전기만 사용해야 한다.
소방청은 과충전을 막기 위해 외출하거나 잠을 자는 동안에는 충전을 삼가야 한다고 권고한다. 여러 전열기구가 꽂힌 콘센트에서는 충전 용량을 초과할 수 있어 단독 사용이 바람직하다.

배터리를 사용하는 전기 스쿠터나 자전거에 가해지는 충격도 최소화해야 한다. 전극 분리막이 훼손되면 열 폭주 현상이 나타날 수 있기 때문이다.
아파트 단지 등에서는 실외에 별도의 전기 이동기기 충전소를 두는 방안도 검토되고 있다. 공하성 우석대 소방방재학과 교수는 “외부 충전소를 만들어 집에서 배터리를 충전하는 것을 최소화하면 화재 피해를 줄일 수 있을 것”이라고 봤다.
인세진 전 우송대 소방안전학부 교수는 “화재가 발생한 제품은 하자가 있는 제품”이라며 “제조사들이 더 많은 책임을 지게 하는 등 정부의 관리 강화가 필요하다”고 강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