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스피 11개월 만에 최고치…외인 2조 베팅
정치 안정에 반응한 시장, ‘코리아 디스카운트’ 해소 조짐
AI·배터리·로봇에 집중 투자…성장 엔진 켜진다

“이제야 좀 숨통이 트이는 기분이에요.”
서울 마포에 거주하는 40대 주부 박모 씨는 최근 코스피 급등 소식을 접하고 오랜만에 주식 앱을 열었다. 몇 년째 빨간불만 보이던 계좌에 드디어 초록불이 켜진 걸 보자, 그녀는 기쁨을 감추지 못했다.
박 씨는 “남편 몰래 모은 비상금으로 시작한 주식이었는데, 매일 마이너스만 늘어나니 한숨만 나왔죠. 이번엔 진짜 회복되는 걸까요?”라며 기대 섞인 표정을 지었다.
“이 정도면 믿고 담는다”…정치 리스크 걷히자 외국인 돈폭탄
이재명 대통령 당선 직후, 코스피가 이틀 만에 113포인트 급등하며 11개월 만에 최고치를 기록했다.

외국인들은 2조 원이 넘는 돈을 한국 증시에 쏟아부었고, 기관투자자들도 동시에 매수에 나섰다. 이런 현상을 ‘허니문 랠리’라고 부른다.
허니문 랠리란 새로운 정치적 변화 때 투자자들이 기대감을 갖고 주식을 사들이는 현상이다. 투자자와 시장이 서로를 믿고 화합하는 시기인 셈이다.
정치적 혼란이 정리되면서 투자자들의 마음이 바뀌었다. 그동안 한국 증시는 ‘코리아 디스카운트’라는 굴레에 시달렸다.
코리아 디스카운트는 한국 기업들이 다른 나라 기업들보다 낮은 가격으로 거래되는 현상이다. 한국 기업들은 실력은 좋지만 정치적 불안정 때문에 제대로 된 평가를 받지 못했던 것이다.

하지만 분위기는 달라졌다. 대통령 파면이라는 초유의 사태가 헌법 절차에 따라 정리되면서, 정권 교체는 큰 혼란 없이 마무리됐다. 외국인 투자자들 사이에서는 한국이 다시 예측 가능한 질서를 회복한 것으로 받아들여지고 있다.
불확실성이 걷히자 시장은 빠르게 반응했다. 정권 교체 과정의 절차적 투명성과 안정적인 출범은 시장에 신뢰를 회복하는 신호로 작용했다. 그동안 투자 심리를 짓눌렀던 정치 리스크가 한발 물러선 것이다.
재정 풀고 미래에 베팅…‘성장판’ 키우는 새 정부 드라이브
새 정부의 경제정책도 시장을 자극한다. 35조 원이 넘는 추가경정예산을 편성해 경기를 끌어올리겠다고 발표했다.
추가경정예산이란 정부가 처음 계획한 예산 외에 추가로 편성하는 예산이다. 정부가 직접 돈을 풀어 소비를 늘리고 경기를 살리겠다는 뜻이다.

경제학에서는 이를 ‘유효수요 창출’이라고 부른다. 정부가 돈을 써서 사람들의 구매력을 높여주는 정책이다.
더 중요한 건 미래 전략이다. 정부는 인공지능 반도체, 차세대 배터리, 재생에너지, 로봇 산업에 집중 투자하겠다고 밝혔다. 이런 분야들은 전 세계가 주목하는 차세대 성장 동력이다.
마치 20년 전 인터넷이 등장했을 때처럼, 지금은 인공지능과 친환경 기술이 세상을 바꾸고 있다. 한국 정부가 바로 이 분야에서 승부를 걸겠다고 선언한 것이다.
세 가지 요소가 동시에 작용하고 있다. 정치 안정, 재정 확대, 미래 산업 전략이 그것이다. 이는 과거의 일시적 반등과는 성격이 다르다. 외부 충격에 흔들리는 반짝 상승이 아닌, 구조적 변화의 시작점이라는 평가가 나오는 이유다.

물론 과도한 기대는 위험하다. 정책이 실제 효과를 내려면 시간이 필요하고, 실행 과정에서 예상치 못한 변수들이 생길 수 있다.
하지만 분명한 것은 한국 증시가 새로운 국면에 접어들었다는 점이다. 오랫동안 잠들어 있던 거인이 마침내 깨어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