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트럼프 때문에 죽을 맛”…속사정 알아보니 현대차·기아 ‘어쩌나’

일본·EU, 연이어 관세 인하 성공
한국, 협상 지연에 업계 ‘비상등’
현대차 수출 경쟁력 급속히 흔들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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폭스바겐 / 출처 : 연합뉴스

관세 전쟁의 무게추가 급격히 기울고 있다. 일본과 유럽연합(EU)이 잇따라 미국과 자동차 관세를 15%로 낮추는 데 성공하면서, 한국만 홀로 협상 테이블 바깥에 남겨졌다.

미국 시장에서 현대차·기아 등 국내 완성차 기업들이 맞서야 할 글로벌 경쟁자들이 줄줄이 관세 혜택을 확보한 가운데, ‘25% 장벽’을 넘지 못한 한국의 수출 경쟁력은 시한폭탄처럼 흔들리고 있다.

막판 협상 시한이 임박하면서, 정부는 벼랑 끝 협상에 나섰다. 그러나 시간은 한국 편이 아니다.

유럽도 관세 인하 합류…현대차·기아 직격탄 우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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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럽연합(EU) 관세 협상 / 출처 : 연합뉴스

일본에 이어 유럽연합(EU)까지 미국과 자동차 관세를 15%로 인하하는 데 합의하면서, 한국 자동차 업계에 비상이 걸렸다. 도널드 트럼프 전 미국 대통령과 우르줄라 폰데어라이엔 EU 집행위원장이 영국 스코틀랜드 턴베리에서 만나 관세 인하에 전격 합의했다는 외신 보도가 전해지자, 국내 업계의 긴장감은 더욱 고조되고 있다.

이번 결정으로 EU산 자동차에도 기존 25%에서 낮아진 관세율이 적용된다. 앞서 영국이 연간 10만 대 한도로 관세를 10%까지 낮춘 데 이어, 또 하나의 ‘빅딜’이 성사된 셈이다. 업계는 주요 경쟁국들이 잇따라 유리한 조건을 확보한 반면, 한국만 별다른 진전을 이루지 못하고 있다는 점에서 위기감을 감추지 못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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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동차 수출 / 출처 : 연합뉴스

EU는 폭스바겐, 메르세데스-벤츠, BMW 등 세계적인 브랜드들이 집중된 지역으로, 연간 미국 수출 규모만 60조 원에 이른다. 특히 현대차그룹과 글로벌 시장 점유율을 놓고 경쟁 중인 폭스바겐이 EU의 대표 주자라는 점에서, 이번 협상 결과는 한국 완성차 업계에 직접적인 위협으로 작용하고 있다.

미국 내 수입차 판매 비중을 살펴보면, 폭스바겐은 80%, 현대차·기아는 65%, 벤츠는 63%를 차지한다. 관세 변화가 단순한 숫자 조정을 넘어 시장 판도에 결정적인 영향을 미친다는 것을 보여주는 대목이다.

한 업계 관계자는 “경쟁국들이 관세를 줄줄이 낮추는 상황에서 우리만 뒤처진다면, 피해는 눈덩이처럼 커질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일본, 대규모 투자로 협상 선점…한국은 아직 ‘제자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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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 관세 협상 / 출처 : 연합뉴스

일본은 미국과의 협상에서 총 5,500억 달러(약 759조 원)에 이르는 투자 및 시장 개방안을 제시하며 관세 인하를 이끌어냈다. 자동차뿐 아니라 쌀 등 미국 주요 산업 전반에 걸친 이 같은 대규모 제안은, 트럼프 전 대통령의 요구 수준인 4,000억 달러를 훌쩍 넘어선 수치였다.

정상회담까지 열며 전방위로 협상에 공을 들인 일본은 결국 자동차 수출 경쟁력 측면에서 한국보다 한발 앞서게 됐다.

산업통상자원부에 따르면 한국의 대미 무역흑자 660억 달러(약 91조 원) 중 60% 이상이 자동차 산업에서 발생한다. 이처럼 자동차 의존도가 높은 상황에서 높은 관세가 유지된다면, 현대차·기아를 비롯한 국내 업체들의 대미 수출 경쟁력은 급격히 떨어질 수밖에 없다.

정부는 일본과 비슷한 수준의 투자 계획을 미국 측에 제시하는 방안을 고심 중이다. 예를 들어 미국산 농산물과 자동차 부품 구매 확대, 에너지 인프라 투자 등 다양한 카드가 검토되고 있지만, 일본보다 경제 규모가 작고 협상 여력이 제한적인 한국이 같은 조건을 충족하기는 현실적으로 어렵다는 평가도 나온다.

막판 협상 총력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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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널드 트럼프 대통령 / 출처 : 연합뉴스트럼프 대통령 / 출처 : 연합뉴스

한국 정부는 오는 8월 1일까지로 예정된 미국과의 협상 시한을 앞두고, 막판 스퍼트를 올리고 있다. 김정관 산업통상부 장관은 계속해서 고위급 접촉을 시도 중이다.

정부는 현재 쌀과 쇠고기 등 국내 민감 품목은 협상 대상에서 제외한다는 입장이지만, 미국 측의 요구 강도에 따라 일부 조정 가능성도 배제하지 않고 있다. 김 장관은 “일본과 미국 간 합의 내용을 면밀히 분석해 우리의 전략에 반영하겠다”고 밝혔다.

한편, 중국은 다음 달 12일까지가 협상 마감 기한이며, 인도네시아는 이미 19%의 관세율로 미국과 합의하며 32% 부과 위기를 피했다. 자동차 관세를 둘러싼 미국의 재편 전략이 전방위로 확산되고 있는 상황에서, 한국의 ‘눈치보기’는 더 이상 통하지 않을 수도 있다.

국내 자동차 업계는 “시간이 없다”며 조속한 관세 인하를 강력히 요구하고 있다. 업계 한 관계자는 “관세 인하는 단순한 숫자 조정이 아닌, 생존의 문제”라며 정부의 전략적 대응을 촉구했다.

뒤처진 협상, 한국 자동차의 생존 위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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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대차·기아 사옥 / 출처 : 연합뉴스

일본과 EU는 단순히 관세 인하에 성공한 것이 아니다. 전략적 투자, 정상급 외교, 치밀한 협상으로 ‘미국 시장 내 입지’를 재확보한 것이다. 반면, 한국은 아직 협상 테이블조차 제대로 마련하지 못한 상태다.

현대차그룹을 비롯한 국내 완성차 업체들은 미국 수출 비중이 높은 만큼, 현행 25% 관세가 유지될 경우 세계 시장에서의 입지는 빠르게 위축될 수 있다.

정부는 일본식 투자 공세를 그대로 따라가기엔 한계가 있는 만큼, 보다 정교하고 차별화된 전략이 필요하다. 미중 간 견제, 에너지 안보, 첨단 산업 공급망 등 미국의 이해관계를 정확히 짚어낸 뒤, 실익 있는 교환안을 제시해야 할 시점이다.

관세율의 숫자 싸움이 아니라, 미래 산업 생존을 건 외교 전쟁이 시작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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