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바짝 추격하는 중국 핵융합 기술 경쟁력
“우리가 계획만 발표할 때 중국은 건설했다”
연방기금 축소되는 미국, 위기감 고조

“미국 기업들의 설계를 모방하는 것을 목격하고 있다.” 한 핵융합 기술 기업 CEO의 경고가 미국 과학계를 뒤흔들고 있다.
미국 CNBC 방송은 지난 16일(현지시간) 미국과 중국 간 핵융합 발전 기술 격차가 빠르게 좁혀지고 있다고 보도했다.
차세대 에너지 기술로 주목받는 핵융합 발전 경쟁에서 수십 년간 주도권을 쥐어온 미국이 중국에 추월당하고 있다는 위기감이 고조되고 있는 것이다.
지각변동 일으키는 차세대 에너지 기술

핵융합 발전은 태양의 에너지 생성 방식을 모방한 기술이다. 방사성 폐기물을 배출하지 않으면서도 기존 핵분열보다 연료 1kg당 4배, 석탄보다는 무려 400만 배 많은 에너지를 생산한다.
에너지 효율성과 친환경성을 모두 갖춘 ‘꿈의 기술’로 불리며, 2050년에는 1조 달러(한화 약 1450조 원) 규모의 거대 시장이 형성될 것으로 예상된다.
미국은 지난 2022년 로렌스 리버모어 국립점화시설(NIF)에서 역사적인 첫 ‘핵융합 점화’에 성공했다.

핵융합을 일으키기 위해 투입한 에너지보다 더 많은 에너지를 핵융합 반응으로 생산하는 데 성공한 것이다. 이는 인류 역사상 최초로 핵융합 에너지의 상용화 가능성을 실증한 중요한 성과였다.
민간은 미국, 국가 투자는 중국이 앞서

미국과 중국의 핵융합 기술 경쟁은 투자 방식에서 뚜렷한 차이를 보인다. 미국은 민간 주도로, 중국은 국가 주도로 핵융합 기술 개발에 박차를 가하고 있다.
융합산업협회(FIA)에 따르면 미국 내 핵융합 스타트업에 대한 민간 투자는 2021년 12억 달러(한화 약 1조 7400억 원)에서 80억 달러(한화 약 11조 5800억 원) 이상으로 급증했다.
FIA 회원사 40개 중 25개가 미국 스타트업으로 전 세계 민간 핵융합 투자 80억 달러(한화 약 11조 5800억 원) 중 무려 60억 달러(한화 약 8조 6800억 원)가 미국에 집중되어 있는 것이다.

FIA는 “MS 창업자 빌 게이츠, 아마존 창업자 제프 베이조스, 오픈AI의 샘 올트먼 등 실리콘밸리 거물들이 핵융합 기술에 적극 투자하고 있다”고 밝혔다.
미국 스타트업 ‘코먼웰스 퓨전 시스템’은 약 20억 달러(한화 약 2조 9000억원)를, 워싱턴 소재 스타트업 헬리온은 10억 달러(한화 약 1조 4500억 원)를, 구글이 지원하는 ‘TAE 테크놀로지스’도 12억 달러(한화 약 1조 7400억 원)의 투자금을 유치했다.

반면 중국은 공공 자금을 통한 대규모 국가 투자로 빠르게 추격하고 있다. 미국 에너지부에 따르면 중국은 핵융합 연구에 매년 15억 달러(한화 약 2조 1700억 원)를 투입하는 반면, 미국 연방정부의 핵융합 예산은 지난 몇 년간 연평균 약 8억 달러(한화 약 1조 1600억 원)에 그쳤다.
“중국의 원자로는 미국의 두 배 규모”

CNBC는 미국이 이미 원자로 규모 측면에서 주도권을 잃었을 가능성이 크다고 지적했다. 일반적으로 설치 면적이 클수록 원자로가 플라스마를 더 효율적으로 가열하고 가둘 수 있어 순 에너지 발생 가능성이 높아진다.
위성 사진 분석에 따르면, 지난해 중국이 건설 중인 거대한 레이저 핵융합 시설의 격납 돔 크기가 미국 레이저 핵융합 프로젝트인 NIF의 약 두 배에 달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이에 CNBC는 “중국은 새로운 핵융합 프로젝트를 빠르게 선보이는 반면, 미국의 노력은 30년 이상 된 기존 기계 업그레이드에 집중되어 있다”고 설명했다.

중국의 기존 프로젝트인 EAST(핵융합 유도 토카막 실험 장치)는 지난 몇 달간 원자로 내부 플라스마 최장 봉쇄 기록을 경신하고 있다.
또한 중국은 7억 달러(한화 약 1조 130억 원) 규모의 CRAFT 프로젝트를 올해 완공할 예정이며, 2027년에는 BEST라는 새로운 토카막 시설이 들어설 계획이다.
“우리의 큰 실수였다”

미국 전문가들은 2000년대 초 핵융합 연구 예산 삭감이 현재의 위기를 초래했다고 지적한다. 당시 미국 대학들은 새로운 기계에 대한 연구를 중단하고 연구원들을 중국 등 다른 나라로 보내 새로운 기술을 배우도록 했다.
코먼웰스 핵융합 시스템의 공동설립자 겸 CEO인 밥 뭄가드는 “우리는 새로운 실험기를 만드는 대신 중국에 가서 그들의 실험기 구축을 도왔다. 그건 큰 실수였다”라고 후회했다.
FIA의 앤드루 홀랜드 CEO는 “미 의회가 계획을 실행에 옮기기 위해 돈을 쓰지 않았다. 우리가 계획만 발표할 때 중국은 가서 실제로 건설했다”고 비판했다.

또한 닛케이 아시아의 보고서에 따르면 중국은 현재 어떤 나라보다 많은 핵융합 특허를 보유하고 있으며, 핵융합 과학 및 공학 분야의 박사 학위 취득자 수도 미국의 10배에 달한다.
한편 미 상원의원들과 핵융합 전문가들은 지난달 미국이 주도권을 잃지 않도록 100억 달러(한화 약 14조 4700억 원)의 핵융합 연방 기금이 필요하다는 보고서를 발표했다.
그러나 트럼프 2기 행정부의 연방정부 예산 삭감으로 핵융합 연방 기금의 미래는 불투명한 상태다. 이에 전문가들은 핵융합 기술이 단순한 에너지 문제를 넘어 세계 패권의 핵심 요소가 될 것이라고 경고하고 있다.

이는 핵융합 기술을 선점하는 국가가 에너지 독립성을 확보하고 글로벌 에너지 시장에서 주도권을 장악할 수 있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