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지만 강한 캐스퍼, 유럽 전기차 시장 흔들다
‘수입차 무덤’ 일본서도 판매 돌풍 일으켜
소형 SUV가 글로벌 자동차 판을 바꾼다

전기차 시장의 격전지로 떠오른 유럽에서, 낯익지만 뜻밖의 주인공이 존재감을 키우고 있다.
바로 현대차의 소형 전기 SUV ‘캐스퍼 일렉트릭’(수출명: 인스터)이다. 도시형 경차로 알려진 캐스퍼가 유럽 소비자들의 선택을 받은 건 우연이 아니다. 시장 흐름을 정확히 읽고 발맞춘 전략의 결과다.
‘작고 똑똑한 전기차’를 원한다면… 유럽이 캐스퍼에 반한 이유
유럽은 지금 전기차 전환의 한복판에 서 있다. 도심 진입 제한, 탄소 규제 강화, 치솟는 유류비. 이 삼중고 앞에서 소비자들은 더 이상 크고 강한 차보다는, 작고 똑똑한 전기차를 찾고 있다.
특히 좁은 골목이 일상인 유럽 도심에서 소형차는 선택이 아닌 생존의 문제다. 여기에 경제성까지 갖춘 전기차라면 더 말할 나위가 없다.

캐스퍼는 바로 그 자리에 정확히 착지했다. 유럽에 출시된 지 6개월 만에 판매량 1만 대를 돌파했고, 올해 5월 기준 누적 판매는 1만342대를 기록했다. 같은 기간 국내 판매량(3,902대)의 두 배를 훌쩍 넘긴 수치다.
이 같은 성과 뒤에는 가격 경쟁력이 있었다. 2만5천 유로 이하의 매력적인 출고가, 보조금 적용 시 2만 유로 초반까지 떨어지는 실구매가. 전기차가 아직도 비싸다고 느끼는 유럽 소비자들에게는 충분히 솔깃한 제안이다.
실제로 유럽 시장의 대표적인 가성비 전기차인 다치아 스프링이나 시트로엥 e-C3와 비교해도, 캐스퍼는 주행거리와 실내 편의성, SUV형 디자인까지 앞서 있다.
단순히 작기만 한 것이 아니다. 박스형 구조로 뽑아낸 넉넉한 실내 공간, 도심 운전에 최적화된 기민한 반응성, 그리고 캠핑 문화에 어울리는 외부 전력공급 기능(V2L)까지 갖췄다.

말 그대로 ‘작지만 할 건 다 하는’ 차다. 여기에 유럽 표준 WLTP 기준 최대 355km의 주행거리는 출퇴근은 물론 근교 여행에도 부담 없는 수준이다.
일본도 움직였다… ‘수입차 무덤’에서 통했다는 캐스퍼의 의미
흥미로운 건 일본 시장에서도 유사한 흐름이 감지된다는 점이다. 수입차 무덤으로 불리던 일본에서, 캐스퍼는 현대차 전체 판매의 80% 이상을 차지하며 예상 밖의 반응을 이끌어냈다.
유럽에서의 성공이 특정 지역에 한정된 돌발 이벤트가 아니라, 전방위적인 수요의 변화를 반영하고 있음을 보여주는 대목이다.
다른 한국 자동차들도 바쁘게 움직이고 있다. 기아 니로 EV, 현대 코나 일렉트릭은 이미 유럽 소비자들에게 익숙한 전기차이며, 최근 출시된 기아 EV3는 한 체급 위에서 또 다른 바람을 예고하고 있다.

하이브리드 모델 중심의 투싼과 스포티지도 여전히 견고한 지지를 받고 있다. 제네시스는 GV60을 앞세워 프리미엄 시장 진입을 시도 중이다.
캐스퍼 일렉트릭의 유럽 진출은 단지 ‘한국차가 또 팔렸다’는 뉴스가 아니다. 변화하는 세계 시장의 요구에 발 빠르게 대응한 전략의 성과다.
그리고 그것은 소형 SUV라는 포맷에 담긴, 새로운 가능성의 증거이기도 하다. 유럽 도심을 누비는 작은 전기차가 글로벌 브랜드의 지형을 다시 그릴 수 있다는 것. 지금 우리는 그 신호를 목격하고 있는지도 모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