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값, 사상 최고치 경신…끝없는 상승세
중동 위기·무역 전쟁, 안전자산 선호 부추겨
“현금은 녹는다”…투자자들, 금으로 몰린다

“괜히 현금만 들고 있었나 봐요.”
최근까지 투자할 곳을 찾지 못해 예금만 유지하던 직장인 김 모 씨(35)는 금값이 또다시 사상 최고치를 경신했다는 뉴스를 듣고 허탈한 표정을 지었다.
불과 몇 달 전만 해도 금에 투자할까 고민했지만, 이미 가격이 너무 오른 것 같아 망설이다 결국 기회를 놓쳤다는 생각 때문이다.
김 씨는 “물가는 계속 오르고, 이자도 거의 없어서 손 놓고 있었더니 돈만 녹은 느낌”이라며 씁쓸해했다.

실제로 현금을 들고만 있어도 손해 보는 시대라는 말이 틀린 이야기가 아니다. 물가는 한없이 치솟는데, 내 통장 속 예금 이자는 제자리걸음이기 때문이다.
은행에 돈을 맡겨봤자 실질 가치는 매일 조금씩 사라져간다는 불안감에, 요즘 투자자들은 발 빠르게 대안을 찾아 나서고 있다. 그들이 앞다퉈 찾아가는 자산은 대표적인 안전자산인 ‘금(金)’이다.
중동 긴장 고조…“최후의 피난처” 금에 쏠리는 눈
최근 국제 금값이 매일같이 사상 최고치를 경신하며 시장을 뜨겁게 달구고 있다.
18일(현지시간) 뉴욕상업거래소에서 거래된 금 선물 가격은 온스당 3,040.80달러까지 치솟아 역대 최고 기록을 새로 썼다. 금 현물 가격 역시 온스당 3,038.26달러를 돌파하며 끝없는 상승곡선을 그리고 있다.

금값이 폭발적으로 오르는 이유는 크게 두 가지로 꼽힌다. 첫째는 다시 불이 붙은 중동의 긴장감이다. 최근 이스라엘군이 팔레스타인 가자지구에 대규모 공습을 펼치면서 하루 만에 사망자가 400명을 넘었다는 소식이 전해졌다.
이처럼 지정학적 리스크가 커질 때마다 투자자들은 본능적으로 ‘최후의 피난처’인 금을 찾아왔다.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 2020년 코로나19 팬데믹, 그리고 우크라이나 전쟁 때도 금은 불확실성 속에서 유일한 ‘믿을 구석’ 역할을 했다.
유동성 폭탄 후폭풍…금값 폭등이 멈추지 않는다
둘째는 ‘돈의 가치가 떨어지고 있다’는 근본적인 불안감이다. 미국 등 주요국들이 장기간 경기 부양을 목적으로 막대한 유동성을 공급한 결과, 화폐 가치가 빠르게 희석됐다.

치솟는 물가를 은행 이자로 감당하기 어려워진 투자자들은 공급이 제한된 금에 더욱 관심을 쏟고 있다. 화폐 가치가 흔들릴수록 금값이 오르는 특성을 잘 알기 때문이다.
트럼프發 무역전쟁 재점화…금값 불안감 ‘기름 붓다’
트럼프 대통령의 예측 불가능한 무역정책이 불안을 키운다. 중국과 유럽연합(EU)에 대한 강력한 관세 카드가 다시 꺼내지면서 세계 무역 질서가 흔들리고 있다. 글로벌 경제가 출렁일 때마다 가장 먼저 주목받는 자산 역시 금이다.
글로벌 금 시장 전문가인 MKS 팸프의 니키 쉴스 애널리스트는 “지금의 금값 폭등은 단기 현상이 아니다”라며 “중동 위기는 단지 촉매제일 뿐, 인플레이션과 중앙은행의 금 매입이 지속되는 한 금값 상승은 계속될 것”이라고 전망했다.
이처럼 현금을 들고 있으면 마치 얼음 위에 올려둔 듯 녹아내리는 시대다. 투자를 고민하는 사람들에게 금은 다시 한 번 유력한 대안으로 떠오르고 있다. 과연 이번 금값 상승 랠리가 어디까지 이어질지, 시장의 귀추가 주목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