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인중개사 55만 시대, 현업 종사자는 5명 중 1명뿐
매달 1천 곳 폐업… 자격증보다 월세가 더 무섭다
‘황금자격증’ 신화는 무너지고, 생존게임만 남았다

한때 ‘국민 자격증’이라 불리며 중장년층의 희망이자 안정된 노후의 상징으로 여겨졌던 공인중개사 자격증. 이제 그 화려했던 명성은 과거의 유물이 되어가고 있다.
부동산 시장의 기나긴 침체 터널 속에서, 공인중개사 업계는 유례없는 혹한기를 맞으며 생존 자체를 위협받고 있다.
“자격증은 있어도, 일할 곳도 먹고살 길도 없어”
지난 5월 기준, 전국에서 실제 사무소를 운영 중인 개업 공인중개사는 11만 1천여 명. 이는 2020년 말 이후 가장 낮은 수치다.
특히 2023년 2월부터 단 한 달도 거르지 않고 이어진 감소세는 업계 전반에 드리운 위기의 그림자를 단적으로 보여준다.

자격증을 보유한 이는 55만 명에 달하지만, 5명 중 1명만이 현업에서 활동하고 있는 셈이다. 어렵게 딴 자격증은 장롱 속에 잠들고, 영업은커녕 생계의 벼랑 끝에 내몰린 중개사들이 늘어나고 있는 것이다.
싸늘한 시장의 분위기는 폐업 통계에서 더욱 명확히 드러난다.
올해 2월부터 매달 1천 곳이 넘는 사무소가 간판을 내렸다. 이는 경기 불황이라는 차원을 넘어 중개업이라는 직업 자체의 지속 가능성에 근본적인 의문을 던진다.
얼어붙은 부동산 거래에 사무실 임대료조차 감당하기 벅찬 중개사들이 속출하면서, “자격증보다 월세 고지서가 더 무섭다”는 씁쓸한 자조마저 나온다.
‘제2의 수능’에서 벼랑 끝으로… 중개사 열풍의 흥망성쇠

물론 이 자격증이 처음부터 위태로웠던 것은 아니다. 2000년대 부동산 시장 급등기와 맞물려 ‘정년 없는 평생직업’으로 각광받던 시절이 있었다.
거래 한 건만 성사시켜도 수백만 원대 중개보수를 손에 쥘 수 있다는 기대감, 비교적 적은 비용으로 창업이 가능하다는 인식이 더해지며 공인중개사 시험은 ‘제2의 수능’이라 불릴 만큼 뜨거웠다.
시험장마다 인산인해를 이루던 그때, 자격증은 곧 안정된 미래의 보증수표처럼 여겨졌다.
하지만 모든 기대는 멈춰버린 부동산 거래 앞에서 한순간에 무너져 내렸다.

가격 상승이 멈춘 시장에서 높은 중개보수는 허상에 불과했고, 소규모 거래마저 자취를 감추며 수익은 바닥으로 곤두박질쳤다.
특히 2022년부터 본격화된 고금리 기조와 대출 규제는 매매 시장 전체를 꽁꽁 얼어붙게 한 결정타였다. 여기에 정국 불안과 경기 침체가 겹치며 신규 분양 시장마저 실종되다시피 했다.
부동산 시장의 심장부인 서울에서조차 올 5월까지 일반 분양 단지가 단 두 곳에 그쳤다는 사실은 현재 시장 상황을 압축적으로 보여준다.
‘중개사 전성시대’는 끝났다, 남은 건 생존게임
한때는 누구나 탐내던 자격증이, 이제는 ‘따도 쓸모없는’ 면허로 전락할 위기에 처했다. 물론 여전히 소수의 중개사는 뛰어난 역량을 바탕으로 높은 수익을 올리고 있다.

하지만 그 이면에는 훨씬 더 많은 이들이 생존의 위협 속에서 조용히 사무실 문을 닫고 있다는 냉엄한 현실을 외면해서는 안 된다.
이제 공인중개사를 바라보는 시선과 접근 방식 모두 근본적으로 달라져야 할 때다.
만약 지금 이 순간에도 자격증 취득을 고민하고 있다면, 과거의 성공 신화가 아닌 현재의 냉정한 현실부터 직시해야 한다.
시험에 합격했다는 사실만으로 미래를 기대할 수 있던 시대는 이미 지나갔다. 더 늦기 전에 새로운 생존 전략과 철저한 준비가 그 어느 때보다 절실해 보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