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형 해킹 사태가 스마트폰 시장에
예상치 못한 기회를 만들어냈다
이심(eSIM) 가입자가 40배 급증

SK텔레콤 해킹 사태로 고객들이 불안에 떨고 있는 가운데, 이 위기를 미소 짓고 바라보는 업계가 있다. 스마트폰 제조사들이다. 유심 정보 유출 사고는 물리적 유심의 한계를 드러내며 내장형 이심(eSIM)으로의 전환 기회를 만들어냈다.
이는 삼성전자와 애플 같은 스마트폰 제조사들에게 슬림한 기기 설계와 배터리 효율성 향상이라는 예상치 못한 호재로 작용하고 있다.
해킹이 가져온 이심 시대의 가속화
통신업계에 따르면 SK텔레콤 해킹 사고가 알려진 지난달 22일 이후, 이심에 가입하는 사용자 수가 무려 40배나 증가했다. 당초 SK텔레콤은 사용자들을 위해 유심 무상 교체를 결정했으나, 예상치 못한 유심 재고 부족 현상이 발생하면서 이심이 돌파구로 떠올랐다.

물리적 카드 형태의 유심과 달리 스마트폰에 내장된 가입자 식별 모듈인 이심은 해킹 사태 이전까지 국내에서는 크게 주목받지 못했다.
SK텔레콤 관계자는 “고객이 유심 교체를 원하면 유심 교체를, 이심으로 교체를 원하면 이심으로 교체하도록 하고 있다”고 10일 밝혔다. 이에 더해 SK텔레콤은 이심 ‘셀프 교체’를 더욱 편리하게 할 수 있도록 간소화 절차를 마무리 중이며, 이르면 이번 주 내에 개선이 완료될 예정이다.
스마트폰 제조사들의 기회
“제품을 얇게 만드는 데 있어 유심이 들어갈 공간이 물리적으로 존재하는 것은 설계상 큰 장애이다” 한 스마트폰 업계 관계자의 말처럼, 스마트폰 제조사들은 이번 해킹 사태로 인한 이심 전환을 반기는 분위기다.
소비자들이 더 얇고 가벼운 스마트폰을 선호하는 만큼, 삼성전자는 오는 13일 역대 갤럭시 중 가장 얇은 ‘갤럭시 S25 엣지’를 공개할 예정이다. 애플 역시 슬림 모델을 연내 출시할 것으로 업계는 전망하고 있다.

업계 관계자들에 따르면 이심의 보편화는 단말기 슬림화뿐 아니라 배터리 효율성 측면에서도 이점이 있다.
“이심을 쓰면 유심을 쓸 때보다 배터리 사용 시간이 길어지고 슬림화에도 도움이 된다”고 또 다른 업계 관계자는 설명했다. 다만 이 관계자는 배터리 사용 시간의 차이는 소비자가 크게 체감할 정도는 아니라고 덧붙였다.
국내 이심 도입의 장벽과 과제
미국에서는 이미 2022년부터 개통의 간편함과 편리함으로 인해 이심 사용이 보편화됐다. 세계이동통신사업자협회(GSMA)가 정의한 국제 표준이기도 한 이심이 국내에서 더딘 성장을 보인 이유는 무엇일까?
통신사들이 유심을 수익원 중 하나로 인식하는 데다, 고객이 유심 교체를 위해 대리점에 방문할 경우 부가서비스 등을 영업할 기회로 활용할 수 있어 이심으로의 교체를 적극 권장하지 않았다는 게 업계의 분석이다.

실제로 국내 이심 가입자는 4만 명 정도로 전체 통신 가입자 대비 0.2% 수준에 불과하며, 대부분은 주 번호가 아닌 세컨드 번호 용도로만 사용되고 있다. 통신사들의 제한적인 이심 요금제와 서비스 지원, 복잡한 설정 과정도 이심 확산의 걸림돌로 작용했다.
이심 사용에는 몇 가지 제약도 존재한다. 지원 단말기가 아이폰의 경우 XS 시리즈 이상, 갤럭시의 경우 S23 이상으로 비교적 최신 기종으로 한정된다는 점과, 스마트폰 파손 시 이심을 이동할 수 없어 통신사 회선을 활용한 인증이 어려울 수 있다는 단점이 있다.
하지만 이번 SK텔레콤 해킹 사태가 역설적으로 국내 이심 시장 확대의 결정적 계기가 될 수 있다는 전망도 나온다. 불안한 보안 상황에서 이심의 상대적 안전성이 부각되면서, 소비자들의 인식 변화와 함께 통신사들의 이심 서비스 확대로 이어질 가능성이 커졌기 때문이다.
삼성과 애플 등 스마트폰 제조사들에게는 디자인 혁신과 배터리 효율 향상이라는 기회가, 소비자들에게는 편리한 통신 서비스 이용이라는 혜택이 주어질지, 이번 해킹 사태가 가져올 통신 환경의 변화가 주목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