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기업, 재무 건전해도 저평가 심화
낮은 주주 환원이 기업 가치 발목 잡아
배당·자사주 매입 확대 필요성 커져

“배당도 적고 주가도 안 오르고 답답하네요.”
국내 주식을 10년 넘게 보유 중인 박 씨는 한숨을 쉬었다. 성장성과 재무 건전성이 양호하다는 평가를 받는데도, 한국 기업들은 여전히 저평가돼 있기 때문이다.
그는 “해외 주식은 배당도 많고 자사주 매입도 활발한데, 한국 기업들은 주주를 위한 정책이 너무 부족하다”며 “기업 가치가 제대로 반영되지 않으니 장기 투자하는 입장에서 답답할 뿐”이라고 말했다.
매출·부채 양호한데… 글로벌 시장서 ‘저평가 굴욕’
한국 기업이 재무적으로 견조한 성장 기반을 갖추고 있음에도 글로벌 시장에서 저평가되고 있다는 지적이 나왔다.

매출 성장률과 부채 비율 모두 무난한 수준인데도 기업 가치는 주요 16개국 중 하위권에 머물러 ‘제값’을 못 받고 있다는 분석이다.
한국은행이 17일 발표한 ‘주주환원 정책이 기업가치에 미치는 영향’ 보고서에 따르면, 한국 기업들은 연평균 매출 성장률이 2.5%로 일부 선진국(일본 -0.1%, 영국 0.0%)을 앞질렀다. 부채 비율(2.4) 역시 16개국 평균(2.9)보다 낮아 재무 건전성은 준수한 편이다.
그런데도 기업 가치 지표인 자본 대비 시가총액(PBR)과 ‘토빈의 Q’에서 한국은 16개국 중 14위에 그쳤다. PBR(1.4)만 봐도 미국(4.2), 영국(3.3), 인도(5.5) 등과 큰 격차를 보인다.
배당만 ‘찔끔’… 해외처럼 자사주 매입 등 적극 환원 필요
보고서는 저평가의 핵심 원인으로 ‘낮은 주주 보호와 주주 환원 수준’을 꼽았다.

한국 기업의 평균 주주 보호 점수는 6.8점으로 12위권에 머물렀고, 배당 성향(27.2%)은 조사 대상국 중 최저였다. 게다가 영업현금흐름 대비 주주 환원 규모(0.2)도 14위로 부진했다.
특히 해외처럼 자사주 매입 등 다양한 환원 정책을 적극 활용하지 않고, 배당에만 집중하는 경향이 두드러진다. 결국 주주 입장에서는 기대할 만한 ‘보상’이 상대적으로 적어 기업 평가에 부정적인 영향이 이어지고 있다는 설명이다.
여기에 투자 부담까지 커지면서 현금성 자산 비중이 낮은 점도 문제다. 한국 기업의 총자산 대비 현금성 자산 비중은 0.08로 16개국 중 12위에 그쳤으며, 영업현금흐름 대비 자본적 지출 비중은 16개국 중 2위로 높았다.
보고서는 “현금성 자산이 주주 환원이나 미래 투자에 사용되면 기업 가치에 긍정적이지만, 지배구조가 취약하면 경영진이 사적으로 유용할 가능성도 있어 우려가 크다”고 분석했다.
주주 보호가 기업 가치를 좌우… ‘선순환’ 체계 만들자

결국 주주 보호 수준이 기업 가치를 좌우한다는 결론이다. 보호 장치가 잘 갖춰진 기업들은 주주 환원도 늘리고, 굳이 많은 현금을 쌓아두지 않아도 투자자 신뢰를 얻어 기업 가치가 상승하는 선순환을 만들 수 있다.
실제로 보고서는 주주 환원 규모가 커질수록 기업 가치가 높아진다고 강조했다.
이에 따라 “중장기적으로 주주 보호를 강화하고, 기업 분할·합병 시 투자자 신뢰를 높이는 지배구조 개선이 필요하다”는 제언이 나온다.
배당이나 자사주 매입 같은 주주 환원을 확대함과 동시에, 미래 성장 산업에도 적극적으로 투자해 ‘기업 가치’와 ‘주주 이익’을 함께 높이는 구조를 정착시키는 것이 관건이다.
그ㅡ래서 상법개정이 필요한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