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 매출 3.6조 증발 현실화”… 약가 인하에 제약 생태계 ‘붕괴 직전’
의사·교수 이어 노동계도 가세… “가격 조정 아닌 일자리 대학살”
“껌값보다 싼 약 강요”… R&D 위축으로 ‘제약 주권’ 상실 우려

“물가는 다 오르는데 약값만 반토막 내라니요. 공장 돌리는 전기료, 원료비는 하늘 높은 줄 모르고 치솟는데 약가는 10년 전보다 더 깎겠답니다.”
한 제약 회사에서 15년째 근무 중인 박 모 씨(42)는 정부의 약가 인하 소식에 밤잠을 설치고 있다. 회사가 수익성 악화를 이유로 구조조정 카드를 만지작거리고 있기 때문이다.
박 씨는 “약값을 깎아서 건보 재정을 아끼겠다는 취지는 알겠지만, 그 칼날이 결국 우리 같은 근로자들의 목을 겨누고 있다”며 한숨을 쉬었다.
최근, 정부의 ‘약가 제도 개편안’을 두고 제약업계가 폭풍 전야다. 정부가 제네릭 가격을 대폭 낮추겠다고 하자 제약협회는 물론 의사·교수·노조까지 ‘결사반대’ 연합전선이 형성됐다.
“연 3.6조 증발”… 공장 멈추고 사람 자르라는 거냐

논란의 핵심은 정부가 기존 오리지널 의약품 대비 53.55% 수준이었던 제네릭 약가를 40%대까지 낮추겠다는 계획이다. 건강보험 재정 건전성을 확보하겠다는 것이지만, 업계가 추산하는 피해 규모는 상상을 초월한다.
한국제약바이오협회 자체 분석에 따르면, 이번 개편안이 시행될 경우 제약업계 전체 매출에서 연간 약 3조 6,000억 원이 증발할 것으로 예상된다. 이는 국내 중견 제약사 10여 곳의 연 매출을 합친 것과 맞먹는 규모다.
업계 관계자는 “이미 해외 원료 의약품 가격 상승으로 마진율이 바닥인 상황”이라며 “여기서 약가를 더 내리면 채산성이 안 맞는 필수 의약품부터 생산을 중단할 수밖에 없다”고 경고했다. 이는 곧 ‘의약품 공급 대란’으로 이어질 수 있다.
“노동계 가세”… 이것은 생존권의 문제
주목할 점은 그동안 노사 갈등을 빚던 노동계가 이번에는 사측과 한목소리를 내기 시작했다는 것이다. 한국노총 산하 전국제약바이오노동조합은 29일 성명을 내고 정부를 강도 높게 비판했다.

이들이 거리로 나선 이유는 ‘고용 불안’ 때문이다. 매출이 3조 원 넘게 빠지면 기업은 가장 먼저 인건비를 줄이려 들 것이고, 이는 대규모 정리해고로 직결된다.
노조 측은 “이번 정책은 단순한 약값 조정이 아니라, 수만 명에 달하는 제약 노동자들에 대한 ‘해고 통지서’나 다름없다”고 주장했다.
“빈대 잡으려다 초가삼간 태운다”… R&D 동력 상실 우려
학계와 의료계 역시 우려를 표하고 있다. 당장 약값을 깎아 건보료를 아끼는 ‘착시 효과’는 있을지 몰라도, 장기적으로는 국내 제약 산업의 허리를 끊어놓는 자충수가 될 수 있다는 지적이다.
국내 제약사들은 제네릭 판매로 번 수익을 신약 개발(R&D)에 재투자하는 구조를 가지고 있다. 이 캐시카우가 마르면 R&D 투자는 사실상 불가능해진다.

서울의 한 의대 교수는 “글로벌 빅파마와 경쟁하려면 기초 체력을 키워줘야 하는데, 정부는 오히려 밥줄을 끊고 있다”며 “국산 약이 사라지면 결국 비싼 수입 약에 의존해야 하고, 이는 장기적으로 건보 재정에 더 큰 부담이 될 것”이라고 꼬집었다.
정부의 ‘재정 절감’ 논리와 산업계의 ‘생존권 사수’가 정면충돌하는 가운데, 현장의 목소리를 무시한 일방통행식 정책이 ‘제약 주권’마저 흔들 수 있다는 위기감이 고조되고 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