엔저 때 일본 가던 한국인처럼… ‘킹달러’ 탄 외국인, 명품 싹쓸이
신세계 본점 외국인 매출 82% 급증… 백화점 3사, 내수 부진 ‘구원투수’
“관광보다 쇼핑”… 환율이 바꾼 한국 여행 트렌드

불과 1~2년 전, 역대급 ‘엔저(엔화 약세)’ 현상에 “일본 가서 명품 사는 게 비행기 값 뽑는 길”이라며 도쿄 백화점으로 달려갔던 한국 쇼핑족들을 기억하는가.
이제 그 상황이 서울 한복판에서 정반대로 재현되고 있다. 원화 가치가 떨어지면서 한국이 외국인들에게 새로운 ‘명품 쇼핑의 성지’로 떠올랐기 때문이다.
23일 유통업계에 따르면, 최근 주요 백화점 명품관은 오픈런을 방불케 하는 외국인 관광객들의 발길로 문전성시를 이루고 있다.
과거 한국인들이 800원대 엔화 환율에 열광하며 일본 백화점을 휩쓸었듯, 이제는 달러나 유로, 파운드화를 든 외국인들이 “한국 백화점이 전 세계에서 가장 싸다”며 지갑을 열고 있는 것이다.
“비행기 값 아깝지 않다”… 원화 약세가 부른 나비효과

실제로 22일 기준 원·달러 환율은 1,469원을 기록하며 고공행진 중이다. 반년 전과 비교해도 100원 이상 올랐고, 유로와 파운드 환율 역시 최근 10년 내 최고 수준이다.
이는 달러나 유로를 쓰는 외국인 입장에선 한국의 모든 물건값이 자동으로 10~15% 할인된 것과 같은 효과를 준다.
특히 가격대가 높은 샤넬, 루이비통, 에르메스 등 명품 브랜드일수록 그 체감 할인 폭은 수백만 원에 달해, 말 그대로 “비행기 타고 와서 사도 남는 장사”가 된 셈이다.
수치로도 증명된다. 지난해 신세계백화점 본점의 외국인 매출은 전년 대비 무려 82%나 폭등했고, ‘강남 1번지’ 강남점 역시 52% 증가했다. 롯데백화점 본점도 40% 늘었으며, ‘더현대 서울’을 앞세운 현대백화점은 전체 매출의 20%를 외국인이 채우고 있다.
“한국 온 김에 쇼핑? 아니, 쇼핑하러 한국 온다”

과거 외국인들의 쇼핑 패턴이 명동 로드숍에서 화장품이나 김 등을 사는 소소한 지출이었다면, 지금은 ‘큰 손’들의 명품 사냥으로 판도가 바뀌었다.
신세계백화점의 경우, 전체 명품 매출이 15% 성장하는 동안 외국인 명품 매출은 67%나 급증했다.
백화점 관계자는 “예전엔 관광 온 김에 백화점에 들렀다면, 요즘은 아예 ‘명품 쇼핑’을 목적으로 입국해 남는 시간에 관광을 즐기는 주객전도 현상이 뚜렷하다”고 분위기를 전했다.
백화점 업계, ‘큰 손 모시기’ 총력전
내수 부진에 시달리던 백화점들은 이 기회를 놓치지 않으려 발 빠르게 움직이고 있다.

현대백화점은 인천공항 환승객을 타깃으로 한 쇼핑 투어 상품을 준비 중이고, 롯데백화점은 외국인 전용 멤버십 혜택을 대폭 강화했다. 신세계 부산 센텀시티점은 크루즈 관광객을 겨냥한 프로모션에 공을 들이고 있다.
증권가도 긍정적이다. 오린아 LS증권 연구원은 “K-콘텐츠로 방한 외국인이 늘고 환율 효과까지 겹쳐 쇼핑 장벽이 낮아졌다”며 “과거 일본의 엔저처럼, 국내 백화점도 당분간 외국인 매출이 실적을 끌 것”이라고 전망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