트로트 전설의 아픈 이별, 7일 영면
8년 무명시절 극복하고 최고 자리에
히트곡 ‘해뜰날’로 전성기 맞아

한국 트로트계의 큰 별이 졌다. 7일 뉴스1 보도에 따르면 ‘해뜰날’의 주인공 송대관이 78세를 일기로 별세했다.
고인은 이날 새벽 통증을 급작스럽게 호소했으며, 서울대학교 병원으로 이송됐으나 끝내 하늘나라로 떠났다. 사인은 심장마비로 밝혀졌으며 빈소는 서울대학병원 장례식장에 마련될 예정이다. 생전 그가 들려준 이야기들이 더욱 가슴 아프게 다가온다.
무명에서 전설이 되기까지
1967년 ‘인정 많은 아저씨’로 데뷔한 송대관은 8년간의 힘겨운 무명 생활을 견뎌냈다.
“굶는 걸 밥 먹듯이 하던 시절”이었다고 그는 회고했다. 하지만 1975년 ‘해뜰날’이 대히트를 치며 그의 인생에도 드디어 해가 떴다.

출연료는 5만원에서 3천만원으로 수직 상승했고, 10대 가수 가요제에서는 팬들의 응원 엽서가 트럭으로 들어올 정도로 인기 절정에 올랐다.
성공 뒤에 숨겨진 쓸쓸함
그러나 화려한 무대 뒤에는 아무도 모르는 고독이 있었다. 과거 한 방송에 출연한 그는 가수왕이 된 날의 뒷이야기를 털어놓았다.
“매니저도 없고 차도 없던 시절, 시상식이 끝나고 혼자 문간방으로 돌아와 트로피를 보며 울었다”는 고백에는 성공의 이면에 숨겨진 외로움이 고스란히 담겨있었다.
위로해주는 사람도, 축하해주는 사람도 없었던 그날, 그는 홀로 트로피를 쓰다듬으며 밤을 지새웠다고 한다.
진정한 동료애를 찾기까지

시간이 흐르면서 송대관은 진정한 동료들을 만났다. 특히 태진아와의 특별한 인연은 많은 이들에게 감동을 주었다.
한때는 미워했던 사이였지만, 세월이 흘러 “진실한 동생이자 동반자”가 됐다고 밝혔다. “태진아가 내 뒤를 따라다니며 이삭을 주워 가수왕이 됐다”는 너스레는 오랜 우정이 만들어낸 특별한 농담이었다.
성공 후에는 어머니와의 소소한 행복도 찾았다. 돈에 맺힌 한을 풀기 위해 어머니와 함께 돈을 깔고 자보기도 했다는 일화는, 그의 인간적인 면모를 보여주는 대목이다.

후배들을 향한 마음도 각별했다. “무명 후배가 잘될 때까지 챙겨주고 싶다”는 말에는 자신의 힘들었던 시절을 떠올리는 진심 어린 애정이 담겨있었다.
생전 지병으로 세 차례 수술을 받았지만 끝내 건강을 회복하지 못한 송대관.
그의 측근에 따르면 “(송대관은) 몸이 안 좋았지만 호전되고 있는 중이었으며, 운동도 열심히 했다”라며 “공연을 할 때 ‘형님, 무리하지 마시죠’라고 하면 ‘형 모르냐?’라며 끝까지 무대를 사랑하셨다”라며 안타까운 마음을 전했다.
‘정 때문에’, ‘차표 한 장’, ‘큰 소리 뻥뻥’, ‘고향이 남쪽이랬지’ 등 수많은 히트곡을 남긴 그의 별세 소식에 트로트계는 깊은 애도를 표하고 있다. 8년의 무명 시절을 견디고 정상에 오른 그의 삶은, 후배 가수들에게 영원한 귀감이 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