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사 아닌 주주도 의무 대상
투자자 권한 커지자 기업 ‘당혹’
개미들은 ‘환영’

“이제 한국 주식시장도 지긋지긋한 박스피를 탈출하는 건가요?”, “상법이 개정된다고 하니 이제 국장 비중을 좀 더 늘려도 될 것 같네요”
본회의를 통과한 상법 개정안이 기업들에 적잖은 파장을 일으키고 있다. 이사의 충실 의무 대상을 ‘회사’에서 ‘회사 및 주주’로 확대하는 내용이 핵심이다.
주주들의 권리를 법적으로 보장하는 첫 단추가 끼워지면서, 기업 경영 패러다임에도 변화가 불가피해졌다는 분석이 나온다.
주주도 ‘충성’ 대상…기업들 “이제는 말 한마디도 조심”

지난 13일 국회는 상법 개정안을 본회의에 통과시켰다. 이로써 이사들이 충실해야 하는 대상은 이제 단순히 회사가 아닌, 전체 주주로 확대됐다. 개정안은 모든 주주의 이익을 공평하게 고려하고 보호하도록 규정하고 있다.
이날 본회의에서는 또 상장회사의 전자 주주총회 의무화 조항도 함께 처리됐다. 변화의 흐름은 예고됐지만, 막상 법이 바뀌자 기업들은 적잖이 당황한 분위기다.
경제계는 즉각 반발에 나섰다. 대한상공회의소(이하 상의)는 “이사의 법적 책임 범위가 모호해져 소송이 빈번해지고, 결국 기업의 투자 의사결정에도 부정적 영향을 줄 수 있다”고 우려했다.
특히 기업들은 개정안 통과로 주주행동주의가 더 활발해질 것을 걱정하고 있다. 상의가 최근 상장기업 300곳을 대상으로 실시한 조사에 따르면, 응답 기업의 83.3%가 ‘법 개정 이후 주주 관여가 더욱 늘어날 것’이라고 전망했다.
10년 새 2배 급증한 주주제안…기업들 “경영권도 흔들린다”

이미 주주들의 영향력은 예사롭지 않다. 상의가 금융감독원 공시자료를 분석한 결과, 소액주주 및 그 연대체가 전체 주주제안 중 차지하는 비중은 2015년 27.1%에서 지난해 50.7%로 두 배 가까이 늘었다.
주주 관여 방식은 다양하다. 배당 확대 요구(61.7%)가 가장 많았고, 자사주 매입·소각(47.5%), 임원 선·해임(19.2%) 등이 뒤를 이었다. 기업 입장에서는 ‘소액주주’가 어느 날 ‘경영 파트너’로 변한 셈이다.
실제 사례도 있다. 한 중소 바이오 상장기업 A사는 최근 소액주주연대에 경영권을 빼앗겼다. 소액주주들이 기존 최대 주주의 3배가 넘는 지분을 확보한 뒤 임시 주총을 열고 창업주를 해임한 것이다.
상의는 “온라인 플랫폼 발달과 정부의 기업가치 제고 정책(밸류업) 흐름이 맞물리며 소액주주들의 영향력이 커지고 있다”고 분석했다. 특히 일부 소액주주연대는 최대 주주에 준하는 지분을 확보해, 실질적 경영권 행사에 나서는 추세다.
“재벌 편이냐, 투자자 편이냐”…법안 의미 ‘상징적’

이에 기업들은 이런 변화가 주주에게 긍정적인 것만은 아니라고 주장한다. 응답 기업 중 40.7%는 주주행동주의가 ‘이사·주주 간 갈등을 키울 것’이라고 우려했고, 25.3%는 ‘R&D 및 대규모 투자에 차질이 생길 것’이라고 답했다.
경제계가 우려하는 것은 ‘단기 이익’에 매몰된 주주 요구다. 상의는 “배당 확대나 자사주 소각처럼 눈앞의 이익에 집중하는 요구가 많아, 기업의 장기적 성장 전략이 흔들릴 수 있다”고 지적했다.
반면 대다수의 네티즌은 “이사의 충실의무에서 ‘주주’를 뺀다는 건 결국 회사가 아니라 경영진만 챙기겠다는 뜻 아니냐”며 “이번 개정안은 자본시장 민주화를 위한 전환점”이라고 주장했다.
결국 오랜 기간 논란이던 상법이 바뀌었다. 기업들이 앞으로 ‘주주와의 공존’이라는 새 시대에서 변화를 잘 받아들일 수 있을지 귀추가 주목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