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난 피해자들, 서비스 해지도 어려워
위약금 면제 약관 있어도 현장선 무용지물
제대로 작동 않는 제도, 개선 목소리 커져

“불탄 집에 인터넷을 다시 설치해 달라고 하세요. 설치가 안 되면 위약금 없이 해지됩니다.” 최근 한 온라인 커뮤니티에 올라온 이 댓글이 화제가 되고 있다.
농담처럼 보이지만, 현실은 그리 웃기지 않다. 실제로 안동 등 전국 산불 피해 지역에서 이재민들이 인터넷이나 정수기 같은 생활 서비스 해지를 요청했다가 위약금을 요구받는 사례가 잇따르고 있다.
“집 잃고 위약금까지?”…재난 이재민에 또 다른 고통
지난 달 산불로 집을 잃은 안동 주민 A씨는 인터넷 해지를 위해 통신사에 연락했다. 하지만 일시 정지는 가능해도, 계약 해지를 원하면 위약금을 내야 한다는 답변을 들었다.
그러나 해당 통신사 약관엔 재난 피해 시 위약금 없이 해지가 가능하다고 명시돼 있다. 2년 전 경북 예천 수해 이후 추가된 내용이지만, 상담 현장에선 제대로 적용되지 않고 있다.

정수기를 해지하려던 다른 이재민 B씨 역시 “지침이 없다”며 약 100만 원의 위약금을 요구받았다. 집과 생계 기반을 모두 잃은 이들에게 기본적인 해지도 큰 장벽이 되고 있는 상황이다.
상담 1위는 ‘해지 불만’…약관 몰라 피해 키운다
이 같은 문제는 최근 한국소비자원 소비자 상담 통계에서도 확인된다. 지난해 접수된 상담은 총 2만 8948건으로, 전년 대비 22.2퍼센트 증가했다.
이 가운데 계약 해제나 위약금 관련 상담이 1만 3971건으로 가장 많아, 절반 가까운 소비자가 해지 과정에서 불편을 겪고 있음을 보여준다.
특히 이동전화서비스는 3년 연속 상담 1위 품목이다. 위약금 과다, 구두 설명과 계약 내용 불일치, 무단 부가서비스 가입 등이 주된 불만이다. 산불 피해자들이 겪은 상황도 이와 다르지 않다.

문제는 재난 피해 시 면제 조항이 있음에도 상담사들이 제대로 알지 못하거나, 안내받지 못했다는 이유로 적용하지 않는 데 있다. 약관이 있어도 소비자가 이를 찾아서 주장해야 한다면 제도는 제 기능을 하지 못하는 셈이다.
피해자만 떠안는 고통…재난 대응, 기업도 바뀌어야
전문가들은 재난 상황에서도 소비자가 번거롭게 요청하지 않아도 면제가 자동 적용되도록 시스템을 정비해야 한다고 지적한다. 약관은 존재하지만, 현장에선 유령처럼 취급되고 있다.
산불 피해 주민들은 삶의 터전을 잃은 상황에서 계약 해지조차 어렵다고 호소한다. 상담 건수가 매년 늘어나는 만큼, 기업의 응대 방식도 달라져야 할 때다.
이번 논란이 약관 이행 시스템을 점검하고 개선하는 계기가 될 수 있을지 지켜볼 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