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로나19 이후 채무 어려움 겪은 이들
상환 시 연체 기록 완전 삭제 혜택
형평성 문제 제기 목소리도 커져

연체 채무로 인생의 발목이 잡힌 수백만 명에게 재기의 기회가 열렸다. 정부가 발표한 대규모 ‘신용사면’ 정책으로 연말까지 빚을 갚은 사람들은 과거의 연체 기록에서 완전히 자유로워질 전망이다.
그러나 한편에서는 꾸준히 제때 상환해 온 사람들과의 형평성 문제와 도덕적 해이 우려가 제기되며 논란이 커지고 있다.
역대 최대 규모 신용사면 단행
금융위원회는 11일 2020년 1월부터 올해 8월까지 발생한 5천만 원 이하 연체 채무를 연말까지 전액 상환할 경우 연체 이력을 완전히 삭제해 주는 정책을 9월 30일부터 시행한다고 밝혔다.

이미 채무를 상환한 272만 명은 즉시 혜택을 받게 되며, 나머지 52만 명도 연말까지 상환하면 동일한 혜택을 누릴 수 있다.
이번 ‘신용사면’은 역대 최대 규모로, 정부는 코로나19와 경기침체, 고금리 상황이 중첩된 비상시기임을 감안한 특별 조치라고 설명했다.
기존에는 채무를 전액 상환해도 연체 기록이 신용정보원에 최대 1년, 신용평가회사에는 최대 5년까지 남아 금융 활동에 심각한 제약을 받았다.

그러나 이번 조치로 수혜자들은 별도 신청 없이 자동으로 연체 이력이 삭제되어 정상적인 금융 생활로 빠르게 복귀할 수 있게 된다.
신용회복 지원의 실질적 효과
금융위는 이번 정책이 실질적인 경제 회복 효과로 이어질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지난해 시행된 신용회복 지원 정책에서도 개인 신용평점은 평균 31점, 개인사업자는 무려 101점이 상승하는 가시적인 성과를 보였다.
이를 통해 약 2만 6천 명이 신용카드를 새로 발급받았고, 11만 3천 명이 제1금융권에서 신규 대출을 이용할 수 있었다.

실제 사례도 정책의 효과를 뒷받침한다. 코로나19로 일을 하지 못해 390만 원이 연체됐던 한 50대 프리랜서는 채무를 전액 상환했음에도 연체 기록 때문에 시중은행 대출이 불가능했다.
그러나 신용회복 지원으로 연체 기록이 삭제된 후 금리가 낮은 대출을 신청할 수 있게 되었다.
형평성 논란과 도덕적 해이 우려
하지만 이번 조치에 대해 빚을 성실히 갚아온 사람들과의 형평성을 무너뜨리고 도덕적 해이를 부추길 수 있다는 비판이 거세다.

금융권에서는 지난해 290만 명이 이미 신용사면을 받았고, 올해 배드뱅크 설립으로 113만 명의 장기 연체자 채무조정이 예고된 상황에서 추가 사면 정책이 나오자 일관성 없는 기준이라는 지적이 나온다.
김정식 연세대 경제학부 명예교수는 “잇단 빚 탕감과 신용사면으로 앞으로 빚을 갚지 않아도 된다는 잘못된 신호를 주며 금융시장 혼선이 커질 수 있다”고 경고했다.
이러한 비판에 대해 금융위는 “연체를 전액 상환한 차주만 대상으로 하므로 도덕적 해이 우려는 제한적”이라며 “이번 대상자의 약 80%는 지난해 조치 이후 발생한 연체자”라고 해명했다.
또한 “과거 조치에 포함되지 않았던 2000만~5000만 원 구간 성실상환 차주도 새롭게 포함했다”고 덧붙이며 정책의 차별성을 강조했다.

신용사면 수혜자들은 별도 신청 없이 9월 30일부터 자동으로 연체 이력이 삭제되며, 신용평가회사가 마련할 시스템을 통해 본인이 대상자인지 손쉽게 확인할 수 있게 된다.
이번 조치가 경제 회복의 마중물이 될지, 아니면 도덕적 해이라는 부작용을 낳을지는 시간이 지나야 판가름 날 전망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