히터만 켜면 꺼지는 전기차
ICCU 전력 제어 장치 결함 논란
보증 늘었지만 근본 해결 미흡

히터를 켰을 뿐인데, 갑자기 전원이 꺼지고 차가 멈춘다. 이상하리만큼 반복되는 이 현상은 현대차그룹의 전기차에서 공통적으로 나타나고 있어 논란이 되고 있다.
문제의 중심엔 ‘ICCU(통합충전제어장치)’라는 낯선 부품이 있다. 전기차의 전력을 조율하는 핵심 장치지만, 잦은 고장 논란 속에 차주들 사이에선 ‘차 안의 시한폭탄’으로 낙인찍힌 셈이다.
히터만 켜도 버티지 못하는 이유

ICCU(통합충전제어장치)는 말 그대로 차량 전반의 전력을 통제하는 장치다. 고전압 배터리와 차량의 각종 장치를 연결해 전기를 배분하는 역할을 한다.
이 장치에 문제가 생기면 차량은 고전압 배터리의 전력을 쓰지 못하게 되고, 작은 12V 보조 배터리에만 의존하게 된다. 문제는 이 12V 배터리가 오래 버티지 못한다는 데 있다.

특히 겨울철처럼 히터, 열선 시트, 성에 제거 기능 등 전기 소모가 급증하는 시기엔 수 분 내 방전이 이뤄질 수 있다. ICCU가 고장나면, 아무리 배터리를 충전해도 차는 다시 움직이지 않는다.
이에 전기차 차주 커뮤니티에서는 “히터 켜자마자 꺼졌다”, “추운 날 시동이 안 걸려 출근을 포기했다”는 경험담이 수백 건 쏟아지고 있었고, 최근 ICCU 관련 고장 제보는 1년 사이 300건을 넘겼다. 특정 모델에만 국한된 문제가 아니라는 뜻이다.
정부도 인정한 결함…하지만 해결됐나?

ICCU 문제는 단순한 불만 수준이 아니다. 국토교통부는 지난해, ICCU의 소프트웨어 오류로 차량이 주행 중 멈출 수 있다고 보고 현대차와 기아의 주요 전기차 16만 9,000여 대에 대해 리콜 명령을 내렸다.
대상 차종은 아이오닉5, 아이오닉6, 제네시스 GV60, GV70, G80 전동화 모델, 기아 EV6 등이다. 해당 차량들은 출시된 지 오래되지 않은 주요 모델들로, 전기차 보급이 빠르게 늘고 있는 상황에서 결함 규모도 결코 작지 않다.
현대차는 리콜 이후에도 사후 대응을 이어갔다. 올해 초, ICCU 보증 기간을 기존 10년·16만km에서 15년·40만km로 확대했다. 이례적인 결정이지만, 그만큼 상황이 심각하다는 방증이기도 하다.
심지어 2022년 7월 이후 ICCU 관련 유상 수리를 받은 차주들에게는 영수증 제출 시 수리비를 돌려주겠다는 보상책도 내놨다.
SUV 시대에 다시 확인된 기본기

보증을 늘려줬지만 “겨울만 되면 불안하다”는 말은 여전하다. 히터만 켜도 시동이 꺼질까 조심스럽고, 센터에 맡기면 부품이 없어 몇 주씩 기다려야 한다. 한번 고쳤던 차가 또 멈췄다는 말도 심심치 않게 들린다.
현대차는 “소프트웨어로 해결 가능하다”고 하지만, 운전자에게 그건 말뿐인 안심일 뿐이다. 전기차가 길 위에서 멈춘다는 건 생명과 직결된 문제다.
기술도, 디자인도 좋지만 차는 ‘멈추지 않아야’ 한다. SUV가 아무리 잘 팔려도, 그 바탕에 있어야 할 건 기본기다.
지금 현대차가 회복해야 할 것은 조건이 아닌 신뢰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