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제복용이 위험한 이유는?
해외에서도 문제로 대두
약물 안전 관리체계 확대 나서

급격한 고령화와 함께 여러 종류의 약을 동시에 복용하는 노인들이 늘고 있다. 하지만, 건강을 위해 먹던 약이 오히려 병을 부를 수도 있다.
건강보험심사평가원과 공주대학교 보건행정학과 공동 연구팀이 다제약물 복용이 노인 건강에 미치는 영향에 대해 국제학술지 ‘프론티어스 인 파마콜로지’에 발표한 연구 결과가 의료계의 관심을 끌고 있다.
다제복용의 숨겨진 위험
연구팀은 2016-2018년 국민건강보험 청구 데이터를 분석해 6584세 노인 약 295만 명의 약물 복용 실태를 파악했다. 세계보건기구(WHO)는 하루 5종 이상의 약물을 정기적으로 복용하면 ‘다제복용’, 10종 이상이면 ‘과도한 다제복용’으로 구분한다.

조사 결과, 90일 이상 약물을 처방받은 노인 중 37.8%(약 112만 명)가 다제복용을 하고 있었다. 과도한 다제복용 비율도 8%(약 24만 명)에 달했다. 180일 이상 복용한 그룹에서도 다제복용 비율은 32.8%, 과도한 다제복용 비율은 5.1%였다.
분석 결과, 180일 이상 다제복용을 계속한 노인은 그렇지 않은 노인에 비해 입원과 응급실 방문 위험이 각각 1.32배, 사망 위험은 1.63배 높았다.
특히, 10종 이상 약물을 장기간 복용한 노인은 더 높은 위험을 보였다. 다제복용이 없는 노인과 비교해 입원 위험은 1.85배, 응급실 방문 위험은 1.92배, 사망 위험은 2.57배까지 상승했다.
우리나라뿐만 아니라
우리나라의 다제복용 문제는 국제적으로도 심각한 수준이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자료에 따르면, 한국의 75세 이상 환자 다제복용 처방률은 70.2%(2019년 기준)로 OECD 평균(45.7%)을 크게 웃돌았다.

해외 연구에서도 다제복용의 위험성이 확인됐다. 영국에서는 노년기 약물 수가 많을수록 파킨슨병 환자의 입원율이 증가했으며, 네덜란드 연구에서는 다제복용 노인과 과도한 다제복용 노인의 사망 위험이 그렇지 않은 집단보다 각각 1.80배, 2.32배 높게 나타났다.
이탈리아 연구에서도 다제복용과 과도한 다제복용이 응급실 방문 후 입원 사망률, 응급실 재방문, 6개월 사망률 등에 부정적 영향을 미치는 독립적 위험 요인으로 분석됐다.
다제복용 관리 방안
전문가들은 다제복용이 합병증과 별개로 노인의 건강 위험을 높인다며, 환자와 의사 모두 다제약물 복용을 줄이려는 노력이 필요하다고 강조한다.

건강보험공단은 노인 다제약물 복용을 안전하게 관리하기 위한 시범사업을 진행 중이다. ‘의약품안전사용서비스'(DUR)를 통해 과다 처방을 제어하고, 노인 요양·돌봄과 연계한 약물 점검·상담 서비스도 제공할 계획이다.
또한, 연구팀은 ‘다제복용을 줄이기 위한 정책적 개입과 함께, 높은 사망률의 원인을 규명하는 추가 연구가 필요하다’고 제안했다.
다제약물을 복용하는 노인은 주치의 또는 내과·가정의학과 전문의에게 약물 검토를 요청하거나, 건강보험공단의 다제약물 관리 사업을 활용하는 것이 바람직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