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누라, 자식 빼고 다 바꿔” 하더니…32년 만에 삼성전자 ‘이럴 수가’

1993년 이건희의 프랑크푸르트 선언
32년 만에 품질경영의 위대한 결실
미국 소비자 만족도 가전 전반 석권

“마누라, 자식 빼고 다 바꿔라.” 1993년 독일 프랑크푸르트, 당시 이건희 삼성 회장의 이 한마디는 단순한 구호가 아니었다.

해외에서 ‘싸구려’ 취급을 받던 삼성의 현실에 대한 처절한 자기반성이자, 양이 아닌 질로 승부하겠다는 피맺힌 선언이었다. 그로부터 32년이 흐른 지금, 그 외침이 마침내 위대한 결실을 맺었다.

미국 소비자가 인정한 ‘품질 왕좌’, TV 넘어 가전 제패

세계 최대 격전지인 미국 시장에서 삼성전자가 소비자들에게 가장 사랑받는 브랜드의 왕좌에 오르는 기염을 토했다.

11일 미국 소비자만족지수협회(ACSI)가 발표한 ‘2025년 소비자 만족도’ 조사 결과는 놀라웠다. 삼성전자가 TV와 생활가전, 청소기 등 주요 부문을 모두 석권하며 미국 소비자들이 가장 만족하고 추천하는 브랜드로 우뚝 섰다.

이번 ACSI 조사에서 삼성전자의 성적표는 압도적이었다. TV 부문에서는 83점을 받아 2년 연속 단독 1위를 차지하며 ‘TV 명가’의 위상을 굳건히 했다.

치열한 경쟁을 벌이는 LG전자와 중국의 TCL은 공동 2위에 머물렀다. ACSI는 보고서에서 “삼성은 최첨단 기술 도입을 선도하며 프리미엄 가전 시장의 기준을 새롭게 만들고 있다”고 평가했다.

더욱 놀라운 것은 생활가전 부문의 도약이다. 2023년 4위, 2024년 3위에 머물렀던 삼성전자는 마침내 올해 미국의 전통 강자 월풀과 함께 공동 1위 자리에 올랐다.

올해 처음 조사가 시작된 청소기 부문에서도 초대 챔피언 자리를 차지했다. 지난 5월 스마트폰과 스마트워치 부문에서도 1위를 기록했던 것을 더하면, 삼성은 이제 모바일과 가전을 아우르는 미국 소비자들의 ‘최애’ 브랜드로 확고히 자리매김한 것이다.

‘불량은 암이다’…휴대폰 15만 대 화형식의 결단

오늘의 영광 뒤에는 처절했던 과거가 있다. 1990년대 초반 삼성 제품의 불량률은 심각한 수준이었다.

1995년, 이건희 회장은 불량률이 11%를 넘어서자 애니콜 휴대폰 15만 대, 시가 500억 원어치를 공장에 모아 불태워 버리는 충격적인 ‘화형식’을 단행했다. “불량은 암”이라는 그의 철학이 얼마나 강력했는지를 보여주는 상징적인 사건이었다.

불량이 나면 즉시 생산라인을 멈추는 ‘라인스톱제’를 도입하는 등 품질을 위해서라면 손해를 감수하는 극약처방이 이어졌다.

이처럼 뼈를 깎는 혁신은 삼성의 체질을 완전히 바꿔놓았다. 양으로 승부하던 삼류 기업에서, 품질로 인정받는 초일류 기업으로 나아가는 DNA가 이때 심어졌다.

프리미엄 전략 통했다…’비스포크’로 마음을 훔치다

과거의 품질 혁신은 현재의 프리미엄 전략으로 이어져 꽃을 피웠다. 삼성전자가 월풀과 어깨를 나란히 할 수 있었던 데는 ‘비스포크’ 시리즈의 역할이 컸다.

비스포크는 소비자가 직접 색상과 소재를 선택할 수 있는 맞춤형 가전으로, 성능은 물론 디자인까지 중시하는 미국 소비자들의 마음을 제대로 훔쳤다.

ACSI가 “프리미엄 고가 카테고리에서 표준을 제시하고 있다”고 평가한 것처럼, 단순히 물건을 파는 것을 넘어 새로운 라이프스타일을 제안하는 전략이 치열한 미국 시장에서 제대로 통한 것이다.

32년 전의 절박했던 외침이 어떻게 세계 최고의 브랜드를 만들어냈는지, 삼성전자의 역사가 생생히 증명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