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도심 바나나 열매
기후변화로 재배지 확산
애플망고 연 5억 수익

“바나나 나무랑 꽃은 보기 어렵지 않느냐.”
서울 노원구 한 주말농장 대표의 너스레 섞인 말에 웃음이 나온다. 하지만 이 웃음 뒤에는 심각한 현실이 숨어있다. 열대과일인 바나나가 서울 한복판 노지에서 열리고 있는 것이다.
최고기온 36도를 기록한 지난 30일 천수주말농장에서는 성인 남성 키 1.5배 높이의 바나나 나무가 당당히 서 있었다.
넓은 잎 아래 세 송이의 바나나가 달려 있고, 한 뼘 크기로 자란 수십 개의 바나나와 자주색 꽃까지 매달려 있는 모습은 마치 동남아시아 농장을 연상시켰다.
11년 전 시작된 열대작물 실험

천수주말농장의 바나나 재배는 11년 전부터 시작된 기후변화 실험의 결과다. 마명선 대표는 매년 이어지는 고온다습한 날씨를 보며 열대 과일 재배에 도전했다고 밝혔다.
처음에는 무화과부터 시작했는데 예상보다 잘 자라자 바나나까지 도전하게 됐다는 것이 마 대표의 설명이다. 4년 전 처음 바나나 나무에 꽃이 피었고, 지난해와 올해 연달아 열매를 맺었다.
올해 심은 네 그루 중 세 그루가 살아남았고, 그 중 한 그루에서 바나나가 열렸다. 농장의 온습도계는 35.8도, 습도 73%를 가리키고 있었는데, 이는 바나나 재배 최적 환경인 27-35도와 거의 일치하는 수치였다.
소문이 퍼지면서 외부 방문객들도 늘고 있다. 마 대표는 “농장이 24시간 열려있어 동네 사람들뿐만 아니라 멀리서도 구경을 온다”며 “바나나는 먹어봤지만 나무와 꽃을 보기는 어려우니까”라고 말했다.
기후변화의 양면성, 새로운 농업 기회

하지만 전문가들은 이런 현상을 단순히 긍정적으로만 볼 수는 없다고 지적한다. 바나나가 중부지방에서 자란다는 것은 그만큼 이상기후가 지속되고 있다는 방증이기 때문이다.
실제로 우리나라는 지난해 전국 연평균 기온이 14.5도를 기록해 역사상 가장 무더운 해가 됐다. 마 대표도 “결실을 맺은 것이 지난해와 올해인데, 날씨가 계속 더워지고 있다는 얘기”라며 “사람들도 경각심을 가져야 할 것”이라고 우려를 표했다.
그럼에도 현실적인 농업인의 시각에서는 새로운 기회로 받아들이고 있다. 마 대표는 “지금 같은 날씨가 이어지면 제대로 비닐하우스를 지어 본격적으로 열대성 작물들을 재배해볼 생각”이라고 밝혔다.

실제로 기후변화와 함께 고소득 열대작물로 주목받는 것이 애플망고다. 남부지방을 중심으로 재배가 확산되고 있는 애플망고는 1kg당 4만-4만5천원에 거래되며, 조기 출하 시에는 500g당 4-5만원까지 받을 수 있다.
일부 지역에서는 연간 농가 소득이 5억원에 달한 사례도 나타나고 있다. 광양, 통영, 강진, 청도 등 남부지역은 물론 충북 등 중부 내륙까지 재배지가 확대되고 있다.
애플망고의 인기 요인은 최대 23-24브릭스의 높은 당도와 풍부한 과즙, 비타민C 등 항산화 성분이다. 여기에 새콤달콤한 맛과 상대적으로 적은 인력 투입도 장점으로 꼽힌다.

하지만 전문가들은 신중한 접근이 필요하다고 조언한다. 임정빈 서울대 농경제사회학부 교수는 “폭염과 같은 이상기후에서도 가장 중요한 것은 작물의 상품성”이라며 “열대작물들의 경우 국내에서 상품화가 어렵기 때문에 결국 재해에 강한 기존 품종 개발이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애플망고 재배에도 주의점이 있다. 초기 시설 투자와 겨울철 난방비용 등 진입비용이 높고, 표준화된 재배 기술이나 매뉴얼이 부족하다. 모종부터 첫 수확까지 2-5년이 소요되며, 기온을 최소 10도 이상 유지해야 한다는 조건도 있다.
농촌진흥청 같은 기관 주도로 기후변화 속도에 맞는 품종 연구개발과 보급이 필요하다는 것이 전문가들의 공통된 의견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