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속도로 속도로 626마일, 배터리는 그대로였다
무게 절반·공기저항 최소화가 만든 주행거리 반전
기록보다 현실성, 르노 전기차 전략의 실험대

르노가 공개한 전기 콘셉트카 ‘필란테(Philante) 004’는 압도적인 숫자 하나로 시선을 붙잡는다.
고속도로와 비슷한 속도로 10시간을 달려 626마일(약 1,000km)을 주파하고도 배터리가 남았다. 동일한 배터리를 쓰는 양산형 SUV가 400마일도 채 못 가는 현실을 감안하면, 전기차 주행거리에 대한 통념을 뒤흔드는 결과다.
배터리는 그대로, 발상은 달랐다… 전기차 주행거리 공식을 흔든 필란테
필란테는 기록 경신을 위한 괴짜 실험처럼 보이지만, 접근 방식은 의외로 현실적이다. 르노는 배터리를 무작정 키우지도, 기록을 위해 시속 30km로 천천히 달리지도 않았다.
평균 시속은 약 100km로 우리가 고속도로에서 흔히 유지하는 속도다. 배터리 용량은 현재 판매 중인 ‘르노 시닉 E-Tech’와 같은 87kWh다. 조건은 같았으나 결과는 전혀 다른 차원에 도달했다.

차이는 차체 설계에서 나왔다. 필란테는 1인승 단좌(Single-seater) 구조를 택해 무게를 일반 SUV의 절반 수준인 약 1톤으로 줄였다.
여기에 공기저항을 최소화하고자 항공기에서 영감을 얻은 유선형 외형을 적용했다. 가벼운 몸무게와 바람을 가르는 능력이 만나자, 같은 에너지를 훨씬 멀리 쓰는 마법이 일어났다.
주행은 모로코의 UTAC 테스트 트랙에서 이뤄졌다. 2.5마일 서킷을 세 명의 드라이버가 교대로 돌며 총 239랩을 소화했다.
목표는 10시간 내 1,000km 돌파였으나, 실제로는 이를 가뿐히 넘기고도 배터리 잔량 11%를 남겼다. 계산상으로는 배터리를 모두 썼을 때 700마일(약 1,126km) 이상도 충분히 가능했다는 설명이다.
도로에 서기까지는 멀었지만… 필란테가 남긴 르노 전기차의 다음 힌트

르노가 강조한 핵심은 ‘현실성’이다. 극단적인 환경에서의 일회성 기록이 아니라, 실제 고속도로 주행을 염두에 둔 실험이라는 점이 중요하다.
물론 필란테가 당장 도로에 등장하지는 않는다. 1인승 구조와 파격적인 설계는 양산차와 거리가 있다.
그럼에도 르노는 이번 실험 데이터가 향후 전기차 개발의 핵심 자산이 될 것이라고 확신한다. 고속 주행 효율과 경량화, 공기역학 설계가 도달할 수 있는 한계를 실제 데이터로 확인했기 때문이다.
이 실험이 양산차에 어떤 모습으로 반영될지, 그리고 전기차의 기준을 어디까지 끌어올릴지 르노의 다음 행보를 주목할 필요가 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