트럼프發 車 개방 압박, 이번엔 규제 해제 겨눈다
픽업트럭·SUV 이어 제네시스도 안방 수성 위기
‘90% 점유율’ 내수 독점, 구조 흔들릴 가능성 커져

현대자동차와 기아의 90%에 육박하는 내수 시장 독점 구도에 미국발(發) 균열 조짐이 나타나고 있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요구한 ‘자동차 시장 개방’이 단순 관세 인하가 아닌, 미국산 픽업트럭과 대형 SUV의 국내 진입을 제한해온 비관세장벽 철폐에 초점을 맞춘 것으로 분석되면서다.
‘개방’의 진짜 의미는 규제 해제…미국차에 열린 한국의 문
트럼프 대통령의 ‘자동차 시장 개방’ 발언은 관세 인하에 그치지 않는다.
업계는 이를 미국산 픽업트럭과 대형 SUV의 국내 진입을 제한해온 비관세장벽, 즉 중복된 인증 절차와 높은 환경 규제 완화 요구로 해석하고 있다. 즉, 한국 시장의 특수성을 이유로 유지되어 온 제도적 장벽을 허물라는 의미다.

이 변화는 현대차·기아의 핵심 수익 모델인 대형 SUV 시장부터 위협한다.
현재는 팰리세이드, 쏘렌토 등이 압도적인 판매량으로 시장을 장악하고 있지만, 포드 익스플로러나 쉐보레 트래버스 같은 미국산 경쟁 모델의 가격과 인증 장벽이 낮아지면 독점적 지위는 흔들릴 수밖에 없다.
인증 절차 간소화는 곧 수입 원가 절감과 신속한 시장 출시로 이어져 소비자 가격을 직접적으로 낮추는 효과를 낳는다. 이는 곧 소비자들의 선택지가 실질적으로 넓어짐을 의미한다.
성장세에 접어든 픽업트럭 시장은 타격이 더욱 직접적이다. 기아가 야심 차게 준비 중인 ‘타스만’은 출시와 동시에 수십 년간 시장을 지배해온 포드 F-150, 쉐보레 실버라도와 같은 글로벌 강자들과 안방에서 정면 승부해야 한다.

수입 규제가 완화되면 ‘국산 최초’라는 상징성만으로 강력한 팬덤과 검증된 성능을 갖춘 이들 모델을 상대하기는 어려워진다.
‘제네시스 독주’에 제동 거는 미국차…프리미엄 시장도 흔들린다
프리미엄 시장도 예외는 아니다. 제네시스가 G80, GV80을 필두로 국내 시장에서 확고한 신뢰를 얻었지만, 캐딜락과 링컨 등 미국 프리미엄 브랜드의 수입 절차가 간소화되면 경쟁은 불가피하다.
특히 미국 자동차 안전 기준(FMVSS)을 충족하면 국내 기준(KMVSS)도 통과한 것으로 인정하는 범위가 확대될 경우, 미국 브랜드는 다양한 트림과 옵션의 신차를 더 빠르게 국내에 선보일 수 있어 시장 경쟁은 한층 치열해질 수 있다.
현대차·기아의 압도적 점유율이 순수 제품 경쟁력만으로 이뤄진 결과가 아니라는 분석이 힘을 얻는 이유다. 까다로운 인증, 중복 규제 등 비관세장벽이 사실상 수입차의 진입을 억제하는 역할을 해왔기 때문이다.

만약 미국이 요구하는 ‘자기인증제’가 도입되면, 제조사가 스스로 안전성을 입증하고 판매하는 방식으로 전환되어 정부 주도 인증 체계는 약화된다. 이는 곧 국내 브랜드의 독점 구도가 구조적으로 흔들릴 수 있음을 의미한다.
물론 세단이나 소형 SUV 시장은 영향이 제한적일 수 있고, 전국에 촘촘히 깔린 서비스망과 부품 수급의 용이성은 여전히 현대차·기아의 강력한 무기다.
하지만 규제라는 보이지 않는 안전망 아래 내수 시장을 장악하던 시대는 끝나가고 있다.
외부와의 치열한 경쟁은 품질 향상과 가격 합리화 등 긍정적 효과를 낳을 수도 있지만, 중요한 것은 이 경쟁이 과거와는 전혀 다른 차원에서 펼쳐진다는 점이다. 이제는 외부에서 밀려오는 구조적 변화에 어떻게 대응할 것인지를 증명해야 할 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