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기아의 북미 시장 핵심 대형 스포츠유틸리티차량(SUV)인 텔루라이드가 2027년형 풀체인지 모델을 선보이며 과감한 승부수를 던졌다.
1세대 모델의 든든한 심장이었던 3.8리터 V6 자연흡기 엔진을 단종시키고, 그 자리를 2.5리터 4기통 가솔린 터보 엔진으로 완전히 대체한 것이다.
형제 차량인 현대자동차 팰리세이드가 신형 모델에서도 여전히 3.5리터 6기통 엔진을 고집하는 것과는 확연히 상반된 행보다.
특히 텔루라이드 6기통 모델은 단종 직전인 2025년 미국 시장에서만 12만 3,281대나 팔려나간 핵심 흥행 주역이었다.

이는 2024년 판매량인 11만 5,504대보다 6.7%나 증가한 수치로, 대형 차량 시장에서 6기통 엔진이 주는 묵직한 상징성과 끈끈한 인기를 고스란히 증명한다.
이처럼 잘 나가던 효자 모델의 파워트레인을 통째로 바꾸는 것은 자칫 무모한 모험으로 비칠 수 있었다.
하지만 시장의 반응은 뜨겁다. 신형 텔루라이드는 4기통 터보 엔진을 얹고도 지난 2월 미국 시장에서 전년 동월 대비 무려 37% 급증한 판매량을 기록했다.
이는 실린더 개수 감소에 대한 소비자의 거부감이 사실상 기우였음을 명확하게 보여주는 대목이다.
무거워진 차체, 터보의 강력한 한 방이 필요했다

기아가 잘 팔리던 V6 엔진과 작별을 고한 가장 큰 이유는 바로 토크의 차이에 있다. 2027년형 신형 텔루라이드는 이전 세대보다 덩치가 한층 커졌고, 무게도 120kg 이상 무거워졌다.
기존 3.8리터 6기통 엔진은 291마력의 출력을 냈지만, 최대 토크가 고속 영역에서 뒤늦게 터진다는 뚜렷한 한계가 존재했다.
무거워진 신형 모델을 이 자연흡기 엔진으로 이끌었다면 도심 주행이나 오르막길에서 심한 답답함을 느낄 수밖에 없는 구조다.
반면 새롭게 심은 2.5리터 4기통 터보 엔진은 최고 출력이 274마력으로 소폭 줄었지만, 일상 주행 영역에서부터 막강한 최대 토크를 뿜어낸다.

가속 페달을 밟는 즉시 터져 나오는 강력한 힘 덕분에, 덩치 큰 대형 차량을 훨씬 경쾌하고 여유롭게 몰 수 있게 된 것이다.
피할 수 없는 환경 규제, 선택이 아닌 필수
날이 갈수록 엄격해지는 환경 규제 역시 V6 엔진 단종의 결정적인 단초가 됐다.
미국 캘리포니아 대기환경국이 주도하는 최신 배출가스 규제 기준을 기존 대배기량 자연흡기 엔진으로는 도저히 충족할 수 없었기 때문이다.
해당 규제는 2026년형 이후 신차들의 배출가스를 엄격하게 제한하고 있어 자동차 제조사들에게는 거대한 벽으로 다가왔다.

한 업계 관계자는 대형 차량의 덩치를 감당하면서 깐깐한 배출가스 기준까지 완벽히 통과하려면 직분사 터보 시스템의 도입은 생존을 위한 필수 전략이라고 설명했다.
실제로 토요타 그랜드 하이랜더나 지프 그랜드 체로키 등 미국 시장에서 치열하게 경쟁하는 대형 모델들도 속속 4기통 터보 엔진을 주력 파워트레인으로 내세우고 있다.
배기량을 줄이고 효율을 극대화하는 글로벌 트렌드에 텔루라이드도 자연스럽게 합류한 셈이다.
결국 텔루라이드의 6기통 엔진 단종은 단순한 유행 따라가기가 아니다. 커지고 무거워진 차체를 효율적으로 이끄는 동시에, 다가오는 친환경 시대의 기준을 맞추기 위한 치밀하고 현실적인 진화의 결과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