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미국 선거전의 고질적인 병폐인 게리맨더링 논란이 단순한 선거구 경계선 조작을 넘어, 아예 특정 지역의 행정 소속 자체를 바꾸려는 초유의 영토 재편 논쟁으로 번지고 있다.
선거판이 불리하게 돌아가자 상대편 표밭이 밀집한 지역을 버지니아주 밖으로 떼어내 워싱턴 D.C.에 다시 편입시키겠다는 구상이 워싱턴 정가를 발칵 뒤집어 놓았다.
“지도를 다시 정사각형으로”… 180년 만의 영토 조작 논란
공화당 소속 리치 매코믹 하원의원이 최근 발의한 이른바 ‘Make DC Square Again Act’ 법안은 표면적으로는 수도 워싱턴 D.C.의 원래 형태를 복원하자는 명분을 내세우고 있다.
실제로 1790년 연방 수도 구역이 처음 설계됐을 당시 워싱턴 D.C.는 메릴랜드와 버지니아가 내놓은 땅을 합쳐 대략 정사각형에 가까운 10마일 사각 구역으로 만들어졌다.

하지만 1846년 연방 의회가 포토맥강 서쪽과 남쪽 지역을 버지니아주에 반환하면서, 현재의 워싱턴 D.C.는 포토맥강 동쪽을 중심으로 한 형태로 남게 됐다.
매코믹 의원의 법안은 이 1846년 반환 결정을 되돌려, 현재 버지니아주에 속한 알링턴 카운티와 알렉산드리아시 일대를 다시 워싱턴 D.C.로 편입시키겠다는 내용을 담고 있다.
문제는 이 구상이 180년 전 수도 구역의 원형 복원이라는 역사 논쟁에 그치지 않는다는 점이다.
버지니아에서는 최근 민주당에 유리하게 작용할 수 있는 중간 선거구 재획정안이 승인됐고, 공화당 내부에서는 이에 맞서 불리한 지역 자체를 주 밖으로 떼어내려는 카드가 등장했다는 해석이 나온다.

알링턴과 알렉산드리아는 버지니아 북부의 대표적인 민주당 우세 지역이다. 이 지역이 버지니아에서 빠질 경우, 새 선거구 획정 과정에서 민주당이 기대했던 정치적 이점은 상당 부분 약화될 수 있다.
투표권 증발 시나리오, 40만 명의 대표권을 흔들다
이 법안이 겨냥한 알링턴과 알렉산드리아 일대에는 약 40만 명이 거주한다.
이 지역은 2024년 대선에서도 민주당 후보가 압도적 우위를 보인 곳으로, 버지니아 전체 정치 지형에서 민주당 표를 떠받치는 핵심 기반 중 하나로 꼽힌다.
정치 분석가들은 만약 이 지역이 워싱턴 D.C.로 편입될 경우 버지니아의 선거구 지도가 다시 그려질 수밖에 없고, 민주당이 새 선거구 재획정으로 얻을 수 있는 하원 의석 확대 효과도 크게 줄어들 수 있다고 본다.

더욱 치명적인 문제는 이 40만 명의 시민들이 편입될 워싱턴 D.C.의 특수한 정치적 지위에 있다.
미국의 수도인 워싱턴 D.C.는 대통령 선거에서는 선거인단을 갖고 있지만, 연방 상원 의원을 배출하지 못하고 하원에서도 투표권이 있는 정식 의원을 갖지 못한다.
결과적으로 이 법안이 현실화되면 알링턴과 알렉산드리아 주민들은 버지니아주 유권자로서 누리던 연방 상·하원 대표권을 잃거나 크게 약화시킬 수 있다.
비판론자들이 이 구상을 단순한 지도 복원 법안이 아니라, 반대 성향 유권자 수십만 명의 정치적 영향력을 합법적으로 줄이려는 선거 공학이라고 공격하는 이유다.

물론 법안이 실제 통과될 가능성은 크지 않다는 관측이 많다. 의회 문턱을 넘는 것 자체가 쉽지 않은 데다, 1846년 버지니아 반환을 다시 되돌릴 수 있는지에 대한 헌법적 논쟁도 거세게 뒤따를 수밖에 없다.
그럼에도 이번 논란은 미국의 선거구 전쟁이 얼마나 극단적인 단계로 치닫고 있는지를 보여준다.
과거의 게리맨더링이 같은 주 안에서 선거구 선을 유리하게 긋는 싸움이었다면, 이번 구상은 아예 상대 진영의 핵심 표밭을 주 밖으로 빼내려는 발상이다.
투표함을 옮기는 대신 땅의 소속을 바꾸겠다는 정치 공학이 등장한 순간, 미국 민주주의의 선거 지도는 단순한 행정 구역이 아니라 권력 쟁탈전의 최전선이 되고 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