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떻게 알았을까?”…29년 만에 밝혀진 故 이건희 회장의 ‘예언’, 공개되자 “그저 감탄만”

29년 전 이건희의 편지, 젠슨 황을 한국으로 이끌다
초고속 인터넷·반도체 비전, 현실로 이어진 선견지명
AI 동맹으로 다시 만난 세대, 미래 산업의 불씨가 되다

서울 코엑스 무대 위, 검은 가죽 재킷을 입은 젠슨 황 엔비디아 CEO가 뜻밖의 이야기를 꺼냈다. “1996년, 한국에서 처음으로 한 통의 편지를 받았습니다. 보낸 이는 삼성의 이건희 회장이었죠.”

그는 웃으며 그날의 기억을 꺼냈고, 관객석에는 잠시 정적이 흘렀다. 29년 전 한 기업가가 보낸 편지가 오늘날 세계 최고 반도체 기업의 CEO 입에서 다시 언급된 순간이었다.

29년 전 이건희의 한 통의 편지, 미래 기술 지도를 바꾼 선견지명

그가 말한 편지에는 세 가지 비전이 담겨 있었다. 한국을 초고속 인터넷으로 연결하고, 새로운 애플리케이션 산업을 키우며, 이를 실현하기 위한 지원을 아끼지 않겠다는 내용이었다고 한다.

당시만 해도 ‘인터넷’은 생소한 단어였고, 반도체 산업은 일본의 그늘에 가려 있었다. 그러나 이건희 회장은 그때 이미 정보의 흐름이 세상을 바꿀 것이라 내다봤다.

그의 예견은 현실이 됐다. 1990년대 후반 삼성전자는 초고속 통신장비 개발에 투자하며 ADSL 상용화를 앞당겼고, 한국은 세계에서 가장 빠른 인터넷망을 구축했다.

이는 기술 인프라를 넘어 온라인 문화와 산업의 폭발적 성장을 이끄는 발판이 되었다. 동시에 그는 소프트웨어 인재를 키우기 위해 삼성전자 소프트웨어 멤버십을 만들고, 삼성종합기술원을 중심으로 연구개발 혁신의 토대를 다졌다.

이 모든 흐름의 중심에는 ‘신경영’으로 상징되는 철학이 있었다. 불량 제품을 불태우며 품질 혁신을 외쳤던 1995년 구미공장의 장면은 지금도 전설처럼 회자된다.

반도체 투자는 무모하다는 평가를 받았지만, 그 결단 덕분에 삼성은 세계 시장의 판도를 뒤집었다. 결국 그는 ‘메이드 인 코리아’가 기술의 대명사로 자리 잡는 시대를 열었다.

그래서 젠슨 황의 발언은 단순한 우정의 표현이 아니었다. AI와 로보틱스의 미래를 이야기하던 무대에서 굳이 1996년의 편지를 언급한 것은, 한국 기술이 단순한 고객이 아니라 오래된 파트너이자 영감의 원천임을 보여줬다.

이건희의 편지에서 시작된 인연, 세대 넘어 이어진 ‘AI 동맹’

황은 “그 편지 덕분에 한국을 처음 방문했다”고 했다. 그 한 줄의 문장은 이건희 회장의 선견지명이 세계 기술사의 한 장면에 남았음을 보여줬다.

이날 함께 무대에 오른 이재용 삼성전자 회장과 정의선 현대차그룹 회장은 그 편지를 보낸 세대의 뒤를 잇는 인물들이다.

세 사람의 손끝에서 AI 반도체, 전장, 로보틱스 등 새로운 산업의 물결이 다시 시작되고 있다. 이건희 회장이 30년 전 그렸던 연결의 비전이 이제 현실이 되고 있는 셈이다.

29년이 지난 지금, 한 통의 편지가 던진 파장은 여전히 현재진행형이다. 변화의 중심에서 한국 기업들은 다시 한 번 미래를 설계하고 있다.

그리고 그 시작점에는 언제나 ‘미래를 보는 눈’을 가졌던 한 기업가의 그림자가 있다. 앞으로 그 시선이 어디까지 닿을지, 세상의 관심이 쏠리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