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SS 시장, 전력전쟁의 ‘숨은 주인공’ 부상
90% 장악한 중국에 K-배터리 반격 개시
IRA·脫중국 흐름 타고 판도 뒤집을 기회

21세기 산업의 혈액인 전기를 둘러싼 ‘총성 없는 전쟁’이 격화하고 있다.
인공지능(AI) 데이터센터는 막대한 전력을 삼키고, 기후 변화는 안정적인 에너지 공급을 위협한다. 이 위기와 기회의 한복판에 ‘에너지 저장 장치(ESS)’가 있다.
전기를 거대한 그릇에 담아두었다가 필요할 때 공급하는 이 기술이 미래 에너지 패권의 향방을 가를 ‘게임 체인저’로 떠오른 것이다.
문제는 이 거대한 시장의 90%를 중국이 독점하고 있다는 현실. 그 굳건해 보였던 장벽에 균열이 생기면서, K-배터리의 운명을 건 반격이 시작됐다.
‘전력망의 심장’ ESS, 에너지 전쟁의 승부처로

ESS는 날씨에 따라 시시각각 변하는 전력 생산과 소비의 균형을 맞추는 ‘보이지 않는 뇌’이자, 전력망 전체를 지탱하는 ‘심장’이다.
급변하는 에너지 지형을 새로 설계할 수 있는 전략 자산이자, 전기요금 급등을 막는 최후의 보루이기도 하다.
현재 전 세계 ESS 배터리 셀 출하량의 약 90%가 중국 기업의 손에서 나온다. CATL, BYD, EVE 같은 거대 기업들이 가격이 저렴한 LFP(리튬인산철) 배터리를 앞세워 시장을 싹쓸이한 결과다.
반면 삼성SDI, LG에너지솔루션, SK온 등 K-배터리 3사의 주력은 상대적으로 단가가 높은 NCM(니켈·코발트·망간) 배터리였다.

안정성과 에너지 효율에서는 강점을 가졌지만, 중국의 저가 공세 앞에서는 한발 물러설 수밖에 없었다.
IRA 타고 반격 나선 K-배터리, ‘탈중국’이 기회다
하지만 최근 시장의 기류가 바뀌고 있다.
미국이 인플레이션 감축법(IRA)을 통해 중국산 배터리에 고율 관세를 예고하면서, 북미와 유럽을 중심으로 ‘탈중국’ 움직임이 본격화된 것이다. 지정학적 리스크가 부상하며 K-배터리에겐 반격의 기회가 찾아왔다.
한국 기업들은 발 빠르게 움직이고 있다.
삼성SDI는 최근 미국 대형 전력회사와 1조 원이 넘는 대규모 공급 계약을 체결했고, LG에너지솔루션은 유럽과 미국에서 잇따라 대형 프로젝트를 수주하며 생산 라인을 ESS 중심으로 재편하고 있다.

특히 두 기업 모두 LFP 배터리 양산을 본격화하며 중국이 장악한 가격 경쟁력의 영토에 과감히 뛰어들었다.
ESS 시장은 에너지 주권, 산업 생태계, 글로벌 공급망이라는 거대한 퍼즐의 가장 중심에 놓인 조각이다.
한국이 가진 기술력에 전략적 외교와 정부의 지원이 결합된다면, 뒤처졌던 점유율을 단숨에 뒤집을 수 있다. 일부 시장 분석에서는 2027년 미국 ESS 시장에서 한국이 중국을 추월할 것이라는 전망까지 나온다.
ESS는 전력 산업의 판도를 바꿀 ‘게임 체인저’다. 지금이야말로 이 절호의 기회를 붙잡아야 한다. 더 늦기 전에, 잠들어 있는 잠재력을 깨워야 할 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