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보다 부자 나라였는데 “전례 없는 상황 마주했다”…지구 반대편서 무슨 일이?

한때 세계 5대 부자나라
‘간헐적 빈곤층’의 눈물
아르헨티나, 끝없는 추락

월급이 들어오면 20일을 버티고, 나머지 10일은 신용카드나 빚으로 연명한다. 이들은 스스로를 ‘간헐적 빈곤층’이라 부르며 서글픈 현실을 살아가고 있다.

놀랍게도 이곳은 한때 세계 5대 부국으로 불리며 유럽 이민자들이 몰려들었던 남미의 아르헨티나다.

끝 모를 추락을 거듭하던 아르헨티나 경제에 급진적 경제 실험으로 물가를 잡겠다던 밀레이 정부는 결국 민심의 철퇴를 맞았다.

‘문제는 경제야, 바보야’…성난 민심, 정권을 심판하다

지난주 아르헨티나 전체 유권자의 40%가 몰려있는 부에노스아이레스주 지방선거에서 하비에르 밀레이 대통령의 집권당은 야당에 13%포인트 차이로 참패했다.

대통령 친동생의 대규모 뇌물 스캔들이 터졌음에도, 전문가들은 패배의 결정적인 원인은 단 하나, 바로 ‘경제’였다고 입을 모은다.

현지 언론들은 1992년 미국 대선 당시 빌 클린턴 후보가 내세웠던 “문제는 경제야, 바보야”라는 구호를 소환하며, 밀레이 정부가 처참한 선거 결과를 직시해야 한다고 경고했다.

거시 경제 지표가 일부 개선됐다는 정부의 주장과 달리, 당장 먹고사는 문제가 한계에 부딪힌 유권자들이 정권에 등을 돌린 것이다.

월급은 20일 만에 ‘순삭’…’간헐적 빈곤층’의 탄생

현재 아르헨티나 국민들의 삶은 처참하다. 최근 한 여론조사에서 응답자의 63%가 ‘월급이 부족하다’고 답했고, 65%는 지난 6개월간 살림살이가 더 나빠졌다고 밝혔다.

경제학자 기예르모 올리베토는 지난달 현지 언론 인터뷰에서 “국민 10명 중 7명이 월급을 받은 지 20일 만에 소득이 바닥나는 ‘감당할 수 없는’ 현실을 살고 있다”며 이들을 ‘간헐적 빈곤층’이라 명명했다.

이는 절대 빈곤층은 아니지만, 살인적인 물가 때문에 매달 주기적으로 빈곤을 경험하는 서민층이 급증했다는 의미다.

평생을 버스 기사로 일해 온 오마르 씨(57)는 “월급만으로는 도저히 살 수가 없어 퇴근 후 우버 운전대를 잡는다”며 “수십 년 만에 처음 겪는 일”이라고 한탄했다.

물가 잡으려다 경기 죽였다…’시한폭탄’ 된 외환보유고

상황이 이 지경에 이른 것은 물가를 잡기 위한 밀레이 정부의 극단적인 ‘충격 요법’이 오히려 경제를 망가뜨렸기 때문이다.

언론인 세바스티안 라쿤사는 14일 칼럼을 통해 “밀레이 정부가 물가를 잡기 위해 의도적으로 경기 침체를 선택했다는 데에는 이견이 없다”며, “인위적인 환율 유지 정책이 수출 경쟁력을 앗아가고 경제 회복의 싹을 잘라버렸다”고 날카롭게 지적했다.

더 큰 문제는 아르헨티나 경제의 아킬레스건인 외환보유고가 바닥을 드러내고 있다는 점이다.

국제통화기금(IMF)에서 200억 달러의 차관을 빌려왔음에도 연말에 갚아야 할 빚과 환율 방어에 쓰기에는 턱없이 부족하다.

JP모건 등 글로벌 투자은행들이 일제히 우려를 표명하면서 환율이 폭등하고 주가가 하락하는 등, 시장은 이미 아르헨티나 경제에 대한 사망 선고를 내리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