집은 있는데 가난한 노인, 연금이 답될까
연 수익 천만도 못 버는 자영업의 씁쓸한 현실
정년 늘리고 임금 바꾸자…해법은 균형에 있다

노년기, 집은 있는데 생활비가 없다면 어떻게 해야 할까. ‘한강의 기적’을 일군 세대가 황혼에 빈곤의 그늘에 가려 있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회원국 가운데 대한민국 노인빈곤율은 단연 1위다. 전체 노인의 40%가 통계상 빈곤층에 속한다.
눈에 띄는 소득이 없어도 평생 일군 부동산을 보유한 경우가 많지만, 문제는 그 자산이 생활비로 전환되지 못한다는 점이다.
이창용 한국은행 총재는 이 점에 주목했다. 그는 최근 열린 한국은행-KDI 공동 심포지엄에서 “노인 빈곤층이 자산을 연금화하면 약 37%가 빈곤에서 벗어날 수 있다”고 강조했다.
“치킨집보다 연금이 낫다”‥자영업 몰리는 노인, 해법은 따로 있다

그 해법으로 제시한 것이 바로 주택연금이다. 쉽게 말해, 집을 담보로 맡기고 매달 일정액의 생활비를 연금처럼 받는 제도다.
현재 거주를 유지하면서도 현금 흐름을 만들 수 있어, ‘잠자고 있던 자산’에 생명을 불어넣는 방식이다.
한국은행은 55세 이상 유주택자의 35~41%가 주택연금에 가입하면 매년 약 34조 9천억 원의 현금 흐름이 발생할 것으로 내다봤다.
이 중 절반만 소비돼도 연간 민간소비가 17조 원 이상 늘고, 약 34만 명의 노인이 빈곤에서 벗어날 수 있다는 계산이다.

경제 전반에도 긍정적 파급력이 예상된다. 실질 국내총생산(GDP)은 0.5~0.7% 증가할 수 있고, 노인빈곤율은 최대 5%포인트 낮아질 것으로 보인다.
문제는 모두가 집을 가진 것은 아니라는 점이다. 특히 2차 베이비부머 세대 954만 명이 은퇴 시점에 접어들며, 생활비를 위해 무리한 창업에 나서는 사례가 급증하고 있다.
이 총재는 “60세 이상 신규 자영업자의 35%는 연 수익이 1천만 원에도 못 미친다”며 이들이 취약한 업종에 집중돼 있다는 사실을 우려했다.
운수, 음식, 도소매업 등 경기 영향을 크게 받는 영역에 고령층이 몰리면서, 개인은 물론 거시경제 차원의 리스크도 커지고 있다는 분석이다.
정년 늘리고 임금 바꿔야‥고령 일자리 해법 제시

이창용 총재는 자영업 대안으로 정년 연장을 제안했다. 더 오래 안정적으로 일할 수 있도록 하자는 것이다. 다만 청년층 일자리 위축 우려도 고려해야 한다. 이를 위해 그는 임금체계의 유연화가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연공서열 대신 직무 성과 중심으로 바꿔, 고령층에게는 지속가능한 일자리를, 청년층에게는 진입 기회를 보장하는 균형점을 찾아야 한다는 설명이다.
지금 대한민국은 ‘풍요 속 빈곤’이라는 아이러니 앞에 서 있다. 눈에 보이는 자산은 충분하지만, 노년의 삶은 여전히 팍팍하다.
자산을 잠자게 둘 것인가, 아니면 깨어나게 할 것인가. 이제는 선택이 아닌 숙제다. 더 늦기 전에, 노후의 존엄을 위한 실질적인 대응이 시급해 보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