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중국 자동차 시장을 바라보는 한국인들의 가장 큰 착각은 중국차들이 저렴한 가격 덕분에 잘 팔린다는 고정관념이다.
하지만 최근 현지 시장의 판매 데이터를 뜯어보면 가격이 싸서 잘 팔리는 것이 아니라 비싼 차를 내놓아도 대륙의 소비자들은 기꺼이 지갑을 연다는 충격적인 현실과 마주하게 된다.
파격적인 저가 정책을 내세운 한국의 전기차는 처참한 실적을 기록한 반면, 그보다 수천만 원 비싼 중국 브랜드의 럭셔리 모델은 없어서 못 파는 뼈아픈 역설이 펼쳐지고 있다.
7천만 원 비싼데 날개 돋친 듯 팔려
중국 지리자동차 산하의 프리미엄 브랜드 지커가 내놓은 대형 전동화 SUV 8X는 글로벌 자동차 업계를 긴장하게 만든 장본인이다.

지커 8X의 현지 시작 가격은 32만 9,800위안으로 한화 약 7,100만 원 선이며 최상위 모델의 경우 무려 1억 200만 원에 육박한다.
중국에서 3,200만 원대라는 공격적인 시작 가격표를 달고 출시된 기아 EV5와 비교하면 최소 3,900만 원에서 많게는 7,000만 원 가까이 더 비싼 고가의 모델이다.
하지만 판매 성적표는 가격표와 정반대로 움직였다. 지커 8X는 공식 출시 후 단 13일 만에 무려 3,500대가 인도되는 기염을 토했다.
더욱 놀라운 사실은 실제 구매자들의 95% 이상이 기본형이 아닌 최상위 고가 트림을 선택했다는 점이다.

반면 가성비를 무기로 현지 시장의 문을 두드렸던 기아 EV5는 올해 3월 단 216대 판매에 그쳤고, 1분기 누적 판매량도 551대라는 초라한 성적을 남겼다.
지커 8X가 불과 13일 동안 팔아치운 물량이 기아 EV5가 석 달간 팔아치운 성적의 6배를 훌쩍 넘긴 셈이다.
가성비 통하지 않는 무서운 이유
한국 자동차가 중국 시장에서 철저하게 외면받는 진짜 이유는 단순히 가격 경쟁력을 상실했기 때문이 아니다.
중국 전기차 시장은 더 이상 저렴한 가격만으로 승부할 수 있는 단계가 아니다. 현지 소비자들은 단순히 굴러가는 이동 수단이 아니라 굴러다니는 최첨단 IT 기기이자 움직이는 거실 같은 공간을 원하고 있다.

기아 EV5가 나름 합리적인 가격대를 앞세웠지만 중국 브랜드인 BYD나 지리자동차가 제공하는 살인적인 가성비 공세 앞에서는 그마저도 애매한 포지션에 놓이고 말았다.
결정적으로 차량에 담긴 기술적 격차가 소비자의 지갑을 얼어붙게 만들었다.
가격을 낮추기 위해 400V 전압 시스템을 채택한 EV5가 배터리를 채우는 데 약 27분이 소요되는 반면, 지커 8X는 900V 고전압 초급속 충전 시스템을 무기로 단 9분 만에 충전을 끝낸다는 스펙을 내세웠다.
차량 교체나 첫차 구매를 앞둔 중국 소비자 입장에서는 가성비를 원하면 자국 저가 브랜드를 찾고, 럭셔리와 첨단 기술을 원하면 1억 원을 기꺼이 지불하고라도 지커 같은 자국 하이엔드 브랜드를 선택하고 있다.

결국 중국에서 한국차의 부진은 상품 가격이 비싸서가 아니라 굳이 한국차를 사야 할 혁신적인 가치를 입증하지 못했기 때문이라는 냉혹한 분석이 뒤따른다.



















